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Feb 08. 2023

여전히 부족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어언 2년째, 지난 시절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무척 어색하다. 문장도 별로고 내용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슨 글이 그렇게 긴지, 중언부언하는 글도 눈에 띈다. 문득 고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때는 나름 최선을 다해 쓴 글들인데, 지금의 기준으로 다시 고친다면 그때의 글이 아닐 것만 같았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상을 보는 기준과 잣대가 그때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물며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의 모든 것들이 진부해지는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으니, 아마 미래 세대가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때도 내가 지난 시절의 나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참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기후 위기를 초래한 자원의 낭비와 무분별한 개발,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 등등. 무엇보다 서로를 죽이는 전쟁까지. 야만의 시대를 살았다고 혹평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볼 때든 미래를 예측할 때든, 현대 윤리는 오늘날의 격정적인 토론과 무모한 절대적 확신에 대해 요즘 쉽게 찾아보기 힘든 단어 하나를 요구한다. 바로 '겸손'이다." 요즘 일하기 전 짬을 내서 읽고 있는 후안 엔리케스(Juan Enriquez)의 <무엇이 옳은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미래학자의 사회구조 등 거대담론을 언급한 글이라고 해서 개인에게 적용되지 않는 게 아니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 조상들의 생각이나 행동양식은 미개하게 보일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삶의 양태가 세련되어질수록 과거와 타협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우리를 앞서 살았던 선조들의 삶과 역사를 비판하듯, 우리 후손들이 우리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 모두 부족한 '인간'이라는 사실과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물론 지난 시절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어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 가끔 비치는 내 감정이나 느낌, 생각이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때로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도덕주의자처럼 훈계조의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나부터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도 어떤 식으로든 변하고 있다는 거다.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 내가 쓴 글도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끊임없이 좋은 방향으로 새로워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진보는커녕 퇴보가 불가피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흘러가버린 사람이 아닌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는 참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인정하는 대문장가이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고백은 경청할 만하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 내가 쓴 문장은 설령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분명 누군가 썼을 게 틀림없다. 따라서 나 자신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 시대의 땅 위에 자란 풀들 중의 어느 한 포기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춘(立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