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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04. 2023

입춘(立春)

날씨가 많이 누그러진 탓인지 곧 봄이 올 것 같다. 절기상으로 오늘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 入春이 아니다. 조상들이 '입춘'의 한자를 ‘立春’이라고 쓴 이유는 계절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 인간이 일으켜 세워야(立) 비로소 봄(春)이 오는 것이다. 절기상으로는 봄이 왔지만 여전히 마음은 겨울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날씨 탓만 할 건 아니다. 봄을 맞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알베르 카뮈는 말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드디어 내 안에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추우면 나에게 언제 여름이 있었던가 싶다가도 겨울을 잘 견디면 봄이 오고 여름도 곧 오게 되어 있다. 추위를 겪어야만, 아니 견뎌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이다. 겨울을 경험해야 봄과 여름의 느낌도 선명해진다. 뚜렷한 사계절을 경험하는 우리는 그 선명한 느낌만으로도 복 받은 사람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절 스스로도 성실하다. 그래서 '자연(自然)'이다. 우리가 계절을 일으켜 세울 준비만 되어 있다면, 부지불식간에 봄은 자연스럽게 오게 되어 있다.


키키 기린(きききりん) 주연의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2019>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장 추울 때 피는 꽃도 있다. 가장 추운 날이 입춘인 건 선조들이 이제 조금만 참으면 봄이 온다며 스스로를 견디고자 했던 거겠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3월도 아닌 2월 초, 그것도 여전히 추위가 물러갈 기색이 없는 이맘때를 봄의 시작이라고 여겼던 것은 조금만 견디면 곧 꽃 피는 봄이 온다며 스스로를 견디고자 했던 조상들의 의지와 소망의 표현이다. 나는 진정 '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내 안에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여름’이 있는가?


계절을 발견한다는 것은 결국 그 계절을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물론 그건 어느 계절이든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겠지만. 알베르 카뮈가 1936년 1월에 쓴 글을 음미하면서 지나가고 있는 겨울과 곧 다가올 봄을 생각했다.

“1월의 오후. 그러나 쌀쌀한 기운이 대기 속에 남아 있다. 도처에서 손톱으로 건드리면 그냥 부서질 듯한 얇은 햇빛의 막이 만물을 영원한 미소로 옷 입힌다. 나는 누구인가, 이 나뭇잎들과 햇빛의 유희 속으로 빠져드는 것밖에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 담배가 타들어가고 있는 이 햇살. 대기 속에 숨 쉬고 있는 이 부드러움. 이 은근한 열정 그 자체가 되는 것. 내가 나 자신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필시 이 빛의 저 한가운데서일 터이다. 이 세계의 비밀을 열어 보이는 이 미묘한 맛을 이해하고 음미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이 세상의 저 밑바닥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



<알베르 카뮈 _ 작가수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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