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일 / Listen
“미(美)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느낄 수 없는 거래요. 열린 마음으로 살아봐야죠. 지구가 하는 말을 못 들어서 팬데믹과 전쟁을 겪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떠올랐어요.”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데뷔앨범 '리슨(Listen)'을 내면서 한 말이다.
아름다움의 반대는 왠지 미운 것, 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느낄 수 없는 것이라는 정재일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다. 아름다움, 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느낌이 없다는 것은 세상과 나에 대한 감각을 잃는 것, 아름다운 음악, 자연 그리고 사람을 보고도 무덤덤한 별 감응이 없는 것이다.
살아 있다고 하나, 정말 살아 있다고 하기 어렵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하는데, 누구나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다. 우리 눈에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것에도 아름다움이 숨어 있지만,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그에 걸맞는 노력이 필요하고 평소 예민한 감성을 길러야 한다.
감성이란 무엇인가? 자극을 받으면 반응을 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자극을 통해 새로워지는 것,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극이 와도 자극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자극이 너무 세서, 자극이 일상화되어서 무감각해졌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일들은 늘 일어나는 별거 아니라는 나름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생명을 지닌 인간으로서 아무런 감각 없이 살아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그의 앨범 중에 대표곡인 <Listen>를 들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 속에서 뭔가 짜릿한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오히려 그 단조로움이 때로 깊은 울림으로 남기도 한다.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어느 한가로운 바닷가에 앉아 멀리 해가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아마 정재일이 말하는 아름다운 순간이란 이런 것일지도. 사라지는 모든 것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붙잡기 위해, 그는 이 음악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세상이, 내가 살아가는 삶이 나에게 말하는 무언의 외침을 듣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이 자연의 아픈 소리를 외면한 대가로 지난 몇 년간 고통스러운 팬데믹을 겪었듯,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도 또 다른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어쩌면 그 고통은 무감각해지는 것, 아무 감각 없이 살아가는 무미건조한 삶일 것이다. 부디 이제부터라도 세상을 보는, 그것도 아름다움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음악을 듣는 내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