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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29. 2023

나는 모든 글을 '겨우' 쓴다

언제부턴가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별거 아닌 글입니다. 읽었던 책을 기억하고 싶어서, 쓰지 않으면 떠오른 단상들을 잊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뭔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 지루하든 재밌든 지나고 나면 잊힙니다. 아, 그때 그랬었나? 떠올리려고 해도 지나간 순간은 기억 속에 오래 붙잡아둘 수 없습니다. 삶이 낭비되는 것 같았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막상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밤 떠오른 생각이나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있었지만 밤사이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키보드 자판을 눌러봅니다.


처음에는 막막해서 헤매다가 첫 문장을 쓰고 나면 점점 속도가 붙습니다. 잠들었던 감각과 생각들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피곤을 잊기도 하고 쓸데없는 생각들이 멎기도 합니다. 그 시간만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 온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몰입의 순간이 좋았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덧 새벽의 기운이 물러가고 어슴푸레하게 해가 떠오릅니다. 한낮의 소란스러움은 어디로 갔는지 사방은 고요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새벽의 고요함이 낯설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벽의 침묵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퇴근 후 밤에 쓰기도 합니다. 낮의 피곤함이 몰려와 졸음이 쏟아지지만 이상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누르면 졸음의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글을 쓰다가 12시를 훌쩍 넘긴 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글쓰기가 책 읽기와 다른 점은 바로 이 집중의 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근자에 그런 경험을 한 기억이 딱히 없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면 잘 써지든 써지지 않든 시간이 잘 갑니다.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나'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도 많습니다. 특히 어려운 책이나 줄거리가 정리가 안 되는 책에 대해 쓸 때가 그렇습니다. 때로 글로 쓸 소재가 없기도 하구요. 그때는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래도 시작했으니 한 줄이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씁니다.


가끔 제가 쓴 글을 읽어보곤 합니다. 제가 읽어도 재미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런 마음이 들 때는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부담도 되구요.


"나는 모든 글을 ‘겨우’ 쓴다. 삶과 글이 직접성의 관계로 만나는 글쓰기를 꿈꿔 왔으나, 그것은 도달하기 어려웠고, 여전히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김훈 작가의 말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제 글도 추상적이다 보니 삶과 글이 연결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글을 쓰면서 여전히 부족한 저를 봅니다. 고통스러운 일이지요.


그래도 그냥 꾸준히 써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꼭 누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접으면 글을 쓰는 것이 덜 부담스럽습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시작하려고 합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글을 씀으로써 제 삶에 뭔가 흔적을 남기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니까요. 그리고 저는 글쓰기를 생계로 삼는 전문작가도 아니기도 하구요.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프랑스 시인 크리스티앙 보뱅의 이 말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문을 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려고 노력할 겁니다.

"너와 함께 글을 쓴다.

밤과 낮의 단어들,

사랑의 기다림과 사랑의 단어들,

절망과 희망의 단어들.

나는 너와 함께 이 단어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본다.

우리만이 알고 있는 이 깨달음 속에서 글을 쓴다."



<크리스티앙 보뱅 _ 환희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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