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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01. 2023

나는 살면서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영화 / 독전

지난 주말, 넷플릭스에 최근 올라온 영화 <독전>을 봤습니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니 나온 지 벌써 몇 년 되었네요. 극장에서 보지 못했는데도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우연히 영화의 주요 장면을 짧게 편집한 유튜브 영상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영상이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강렬했습니다. 영상을 보고 '이게 무슨 영화지? 연기가 장난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경찰이 마약사범을 잡는다는 통속적인 이야기지만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은 대단했습니다.


조진웅, 류준열, 박해준, 이제는 고인이 된 김주혁에 김성령, 차승원까지. 참, 진서연이라는 여배우도 연기를 참 잘하더군요.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다소 진부한 스토리가 배우들의 명연기로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정작 기억에 남았던 건 마지막 장면입니다. 마약 총책인 ‘이 선생’을 잡았지만, 일명 '락'이라고 불리는 류준열이 이 선생으로 밝혀지고, 조진웅은 경찰 신분증을 반납한 채 이 선생을 찾아갑니다. 눈이 많이 내린 지역, 외딴곳에 있는 집에서 둘은 다시 만납니다. 총을 앞에 두고, 이제는 전직 경찰이 되어버린 원호(배우 조진웅)는 이 선생(배우 류준열)에게 묻습니다.



"넌 살면서 행복했었던 적이 있었냐?"



이 선생을 연기한 류준열의 표정은 담담합니다. 자기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에게는 뭔가 과거에 큰 상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고, 때로 진지하면서 약간은 도도해 보이기까지 한 건 그의 과거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영화에서 잠깐 언급되는 그의 과거. 어린 시절, 부모는 마약 때문에 죽고 의지할 곳 없이 버려진 아이로 의붓어머니에 의해 키워집니다. 마치 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사고로 죽은 아들인 것처럼 살아야만 했던, 그의 무표정한 얼굴만큼이나  행복한 적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유독 이 대사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그 질문이 마치 저에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살면서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이 대사가 없었다면 이렇게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 질문 앞에서 저는 지난 시절, 특히 지나간 추억에 대해서,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던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요? 알았다면 그렇게 지나가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도 결코 바꾸지 않을 순간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순간이 생애 최고의 날이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아서, 그 순간보다 더 행복한 때는 앞으로도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아니면 행복이 뭔지도 모를 시기여서 그냥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만큼 설레고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살면서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흔히 부부 사이에서 배우자를 비난하기 위해, 당신과 살면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말을 종종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정하게 말하는 그들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위기에, 무뎌진 초심과 서로에 대한 무관심에 가려져 행복했던 순간을 잊고만 것이겠지요.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딱히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 건, 행복했던 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그때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건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건 기억하는 현실이 씁쓸했습니다. 저는 다시 저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살면서 행복했었던 적이 정말 없었던가?'



"할머니처럼 쭈글쭈글한 주름투성이가 되어 죽을 때, 나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리라. 최고의 날에 대해. '그, 한여름날, 그날이 역시 그랬다.' 그 모든 것, 바람과 빛의 여운, 1초도 놓칠 수 없었던 정교하고 아름다운 과정. 신은 있다고 얼마나 생각했던가. 기적은 있다고 얼마나 생각했던가. 숨을 죽이고, 얼마나 그것을 기다렸던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치의 마지막 연인>에는 나오는 글입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이제는 신이 있다고, 기적이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마 제가 경험한 그때도 이랬을 겁니다.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나 평범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게 행복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지나갔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이 대사가 제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 했습니다. 아마 ‘이 선생’도 비슷한 심정이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나는 살면서 진정 행복했었던 적이 정말 없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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