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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23. 2023

매혹적인 향기에는 꼭 가슴이 두근거리는 법

길을 걷다가 스쳐가는 사람들에게서 향수 냄새가 풍길 때가 있습니다. 일부러 맡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잠깐 스치듯 지나갔는데 향수 냄새가 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향수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고, 그 향기 또한 공간과 시간에 제한을 받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값비싼 향수를 써야 잔향이 오래가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고가의 향수라도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맡았던 향기를 잃고 맙니다. 향수가 향기의 일종일 수 있으나, 사람의 향기는 향수만으로 각인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향기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잔잔하고 은은한 향이 풍겨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요? 그 향은 아마도 맑고 고아(高雅)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품위'와 같은 것일 겁니다. 인격에서 풍기는 향기는 주위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힘을 가졌습니다. 인공적인 향수와 달리 의지와 노력에 따라 오래 지속되기도 합니다.




'츠레즈레 구사(徒然草)', 즉 '무료함(徒然)의 수상록(草)'은 1331년 일본 승려 요시다 겐코(吉全兼好)가 쓴 수필집입니다. 솔직하고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글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향기와 같은 것은 한낱 허상이 아니던가.

그런데 잠시 옷에 향이 스며들게 한 것인 줄 알면서도

매혹적인 향기에는 꼭 가슴이 두근거리는 법이다.



마음이란 얼마나 오락가락하는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갑니다. 마치 잠깐 머물다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향수와 비슷합니다. 오래가지도 않을뿐더러, 휘발되고 나면 다른 체취와 섞여 오히려 불쾌한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런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놀랄 때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그래서 보고 듣는 것에 따라 마음이 미혹되는 현실, 괴롭습니다.


누구에게나 잠시라도 스며든 매혹적인 향기가 있었을 겁니다. 잠시 옷에 스며든 향이었으니 영원할 수 없고, 곧 사라질 운명이겠죠. 매혹적인 향기라면 더 아쉬움이 컸을 겁니다. 그러나 곧 사라질 허상이면 어떤가요. 한때나마 그 향기에 취해 가슴이 두근거렸다면, 그 순간 삶의 기쁨으로 충만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텐데요. 품격이 담긴 마음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쉬운 건, 그 향기가 점점 희미해진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품고 있어야 할 나만의 향기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시다 겐코의 글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할 은은한 그리고 매혹적인 향기가 남아 있을까?' 향수의 짙은 향기가 아니라,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의 잔향과 같이 살짝 드러나는 오묘하고 매혹적인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품게 하는 조화로운 향기 말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피아노곡은 알렉시스 프렌치(Alexis Ffrench)의 <At Last>입니다. 듣고 있으면 그의 피아노 선율에서도 아름다운 향기가 배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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