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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24. 2023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프레임으로 살면

출근길에 바라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하늘,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성당 건물과 파랗게 맑은 하늘이 어울려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살면서 소중한 건 이런 순간입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움은 이런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상이라는 것을, 매일 흔하게 접하는 하늘이나 태양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요.


여유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시간이 많다고 여유 있는 삶을 사는 건 아닙니다. 삶에 나만의 여백을 만들어 놓고 잠깐이라도 멈추어 나 자신과 주변을 주의 깊게 세심히 살펴보고 채워가지 않으면 많은 시간은 오히려 우리를 지치게 만들거나 심지어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에게 주어졌던 모든 순간은, 비록 사소해 보여도 사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치는 햇빛조차도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에게만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 키니코스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자신을 찾아온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묻자 그가 했던 첫마디가 "조금만 비켜주시오. 햇볕을 가리지 않게."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왕이 아니면 디오게네스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를 존경했습니다. 권력자 앞에서 저런 맹랑한 말을 한 디오게네스나 자칫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거지 행색의 디오게네스의 진가를 알아보고 자리를 비켜준 알렉산드로스나 위대한 인물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마 디오게네스는 일찍이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 곁에서 권력을 누리는 것보다 당장 자신을 비추는 한줄기 햇빛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부와 명예, 권력이 덧없다는 것을. 그는 가난했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적인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술에 만취해 원인 불명의 병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아마 디오게네스는 천수를 누렸을 겁니다. 남들이 주목하는 화려한 삶을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주어진 매 순간을 자기만의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저는 왜 나이가 들어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걸까요. 아마도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더 적을지도 모른다는 현실 앞에서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자각했기 때문일까요. 도무지 절박하거나 간절하지 않으면 무엇이 중요한지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이 시간'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바로 그 시간’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말도 다르지 않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살면, 매 순간순간이 중요해진다. '여기, 지금'이라는 가르침은 청년들에게는 암기를 요하는 지식이지만, 노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의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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