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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14. 2023

사물의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낀다 ㅡ 박완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는 행위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책을 읽을 때는 책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지도 않고 책만 읽을 수 있겠습니까?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닌데요. 때로 책을 읽다가 바깥 풍경을 바라볼 때도 있고, 잠시 책을 덮고 주변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보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는 겁니다. 풍경이 실제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풍경을 보는 내 시선이 변화되어 다르게 느껴지는 거지요.


우울한 기분이 묘사된 책을 읽다가 바라본 풍경은 회색빛입니다. 흥미진진하거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읽다가 바라본 풍경은 총천연색으로 아름답습니다. 모두 우리 삶에 필요한 색들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정서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 독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지식을 얻거나 아니면 저자의 탁견이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삶의 지혜와 미적인 감각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내용이 어떻든 읽기 전과 읽은 후는 분명히 다릅니다. 박완서 작가는 그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곧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저는 이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합니다. 그러니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요? 각종 영상 자료가 넘쳐나는 시대에 활자화된 책을 읽으라고 하니 너무 고루한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지난 시절보다 지식이나 지혜를 얻는 방법으로 책 말고도 다른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책을 읽는 것만큼 생각을 하느냐는 겁니다. 생각 없이 하는 것은 그게 비록 책을 읽는 것이라고 해도 금방 휘발되어 버립니다. 잠시뿐입니다. 어제 본 동영상이 오늘 기억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고민하지 않으면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책은 영상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여백', 모든 것을 활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책에는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만의 생각과 시선으로 그 여백을 채우는 만큼, 사고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빠져나갑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도 그 사랑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미완성으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 간격 때문에 아쉬움이 되었든, 안타까움이 되었든 우리는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겁니다.


놀기 좋은 계절은 책을 읽기에도 좋은 계절입니다. 책은 처음 읽기가 어렵지, 한 번 가속도가 붙으면 습관이 되어 하루라도 뭔가를 읽지 않으면 이상하고 지루해집니다. 안중근 의사도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독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물의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끼고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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