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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08. 2023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

니콜 크라우스 ㅡ 위대한 집

니콜 크라우스의 <위대한 집>에 나오는 세 번째 이야기,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아버지는, 사랑하는 부인이 죽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회고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자신이 살았던 이야기니, 결국 자신이 살았던 삶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성장하면서 더 이상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까요? 자식이 태어날 때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운명의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자식이 있는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식이 태어날 때 자신의 유한성을 처음으로 맛봤다는 사람들이 있었지. 하지만 내 경우는 그런 것과는 좀 달랐다. 내 죽음의 여울에 네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야. 나는 나 자신에게, 나의 전쟁 같던 삶에 너무 매여 있었기 때문에, 날개 달린 작은 전령이 내 손에 있던 횃불을 네 형과 네게로 옮기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때 그걸 알아차렸더라면 나 자신이 더 이상 삶의 중심이 아니었겠지. 삶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 가장 환하게 타오르는 십자가 같은 거. 이미 내 안의 불은 식어가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 나는 여전히 삶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그 반대가 아니라고 믿으며 살았구나.' (250p)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거나 부인하고 싶은 사실입니다. 살아 있을 때는 자신이 죽어야 하는 존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한편으로 그래야만 살 수 있기도 하구요.  


그러나 그때뿐입니다. 바쁜 일상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으니까요.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잊고 맙니다. 그러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거지요. 우리의 실상이 그렇습니다.


여전히 내가 이 삶의 주인처럼 행세하고 싶은 심정, 이 세상 아버지가 모두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요? 자식이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것 그리고 그 성장이 자랑스럽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상실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남자로서의 아버지의 고독이 여실히 느껴졌습니다.




첫째 아들과 달리 소심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둘째 아들. 아버지는 그런 아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려서부터 독특했던 아들, 그런 아들을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부자간의 풍경입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잠시 그러고 말았을 겁니다. 적당한 시점에 서로를 포기하고 마니까요. 한편 자식이 성장하면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기도 하고, 아버지 또한 그전보다는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마 아버지가 어린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고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못마땅한 것은 자신의 지난날의 모습을 아들에게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아들이 자신을 닮지 않고 자신과는 다르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차가운 반응이 나온 것이 아닐까요?  


"젊었을 때 느끼는 강렬한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 약해진다는 건 잘못된 말이다. 사실이 아니지. 나이가 들면서 조절하고 억누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일 뿐, 약해지지는 않아. 그런 감정들은 스스로를 숨기고, 어디 좀 더 신중한 곳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란다."


주인공은 사이가 멀어진 아들에게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아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애가 타는 건 아버지입니다. 부모 마음 알아주는 자식 없다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과거를 불러내 때로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아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표현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습니다.


'네 형은 그렇게 자신을 깎아내리며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다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농담을 할수록,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이 웃게 만들고, 그렇게 본인도 더 행복해지는 거란다.'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아들과 같이 살게 되었을 때도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지만 간섭하지 않습니다. 과거를 불러내 회상하고 스스로에게 하소연할 뿐이지요. '그때 너는 이랬지. 나는 이런 마음이었는데, 너는 알지 모르겠구나...' 이런 식이지요.


아마 훗날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게 되면 뒤늦게 깨닫게 될지 모릅니다. 그때 아버지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면서요.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는데, 맞는 말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 때쯤에는 이미 부모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 자식이 다시 자신의 자식에게 부모에게 받은 사랑처럼 그를 사랑하는 것, 그게 우리의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어버이날, 연로한 부모님 생각을 하면서 그분들이 저를 볼 때도 여전히 당신들이 키웠던 어린아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심정이 복잡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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