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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04. 2023

완벽을 추구했지만 완벽하지 않았던 삶

니콜 크라우스 / 위대한 집

특이한 소설을 읽었습니다. 니콜 크라우스의 <위대한 집>입니다. 주인공들은 달라지는데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책상'입니다. 책상을 물려받으면서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삶이 달라집니다. 3편의 이야기는 얼핏 보면 다른 이야기 같지만, 상실의 고통과 슬픔,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같은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나름의 사연으로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겪지만, 그 슬픔을 드러내는데 서툴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지 못해 고독합니다. 그들은 부조리한 삶과 화해하거나 그 삶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작가 나디아. 그녀는 칠레 출신 시인 다니엘 바르스키로부터 그가 쓰던 책상을 물려받습니다. 잠시 빌려주는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언제 다시 가져갈지 알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칠레의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기 위해 칠레로 돌아가서 소식이 두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작가와 시인, 그리고 독재자에 대한 투쟁.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혼자된 삶. 이렇게 삶은 흘러가고 책상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딸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책상을 돌려줄 것을 요구합니다. 다시 사라진 책상, 그녀는 흔들립니다.  


"저는 잠시 결혼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혼자 살고 있어요. 불행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요. 가끔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갑자기 모든 게 분명해지고 생활을, 특히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환상을 지키기 위해 잊어버리거나 일부러 무시하기로 했던 어떤 다른 차원이, 그 차원을 가리고 있던 벽 너머가 보이는 그런 순간이요."  


우연한 기회에 어느 무용수로부터 듣게 된 '어머니와 함께 차 안에서 타 죽은 무용수의 어린 시절 친구 이야기'를 소설로 쓴 그녀, 내용은 현실만큼이나 비극적이지만 나름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설을 읽은 무용수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비극을 글로 써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느냐는 듯’ 그녀에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그녀는 괴로워합니다.  


“더 나쁜 건, 산더미 같은 말속에 영혼의 가난함을 숨겨온 사기꾼이었어요.” 스스로를 사기꾼으로까지 비하하다니, 무참하다는 것이 이런 걸까요. 작가가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글을 쓰기 어려웠고, 끊임없는 결핍과 상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작업은 계속 엉망이었어요. 이전보다 훨씬 느려진 것은 물론, 이미 써놓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과거에 쓴 것들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방향이 틀렸다는, 그 모두가 거대한 실수였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결핍은 더 커졌고,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지경까지 와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작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어떤 결핍이냐고요? 글쎄, 영혼의 결핍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힘과 활력의 결핍, 연민의 결핍이요. 그리고 그런 결핍에서 이어진, 결과로서의 결핍.“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와 갈등으로 이혼을 하게 됩니다. 항상 자신의 일에 빠져, 어쩌면 그 일을 통해 스스로에게만 빠져 지내는 아내, 그런 아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남편. 감정의 단절. 며칠 대화를 나누었으나 끝내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그렇게 남편은 그녀 곁을 떠나고 맙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그러니까, 둘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희생하기로 했죠. 보내버리기로요."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 살면서 느끼는 상실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느끼는 괴리감 등으로 괴로워하다가 급기야 정신과 상담을 받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완벽을 추구했지만 완벽하지 않은 삶, 누구에게도 곁을 허락하지 않아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했던 삶, 주변 사람들은 그 틈에 들어갈 수 없어 하나둘 지쳐서 떠나가고 그렇게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어 글을 썼던 것입니다.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근원적인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도피성 여행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젊은 남자 아담을 만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도 실패. 두 사람 사이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가까이하기에 그는 먼 사람이었습니다.


"황폐함이 저를 갈가리 찢어놓았다는 말만 드릴게요. 아담은 뭐였을까요? 내가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말할 수 없던 대답을 듣기 위해 제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었어요. 나는 이제 늙은 여자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네요. 오늘부터 늙은 여자가 된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려고 했어요. 제 안의 서늘함에 어울릴 만한 서늘한 웃음이요."


공허함을 이겨내기 위해 차를 몰고 운전하다가 길가에 있는 노인을 치고, 자신도 부상을 입게 됩니다. 상실과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했던 일이 누군가에게 도리어 또 다른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 인생의 역설이 아닐까요?




그녀에게 책상은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책상이 사라지자 그녀는 흔들렸습니다. 삶이 헝클지면서 그동안 자신이 간과했던 모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마치 이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문제는 주어졌는데 답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답도 그녀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답을 찾지 못하는 한, 아무리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고,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나디아만의 문제일까요? 우리도 언제든지 나디아처럼 될 수 있습니다. 작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정작 삶은 실패했던 나디아는 저에게 묻고 있습니다. 무엇이 성공한 삶이냐고. 완벽하려고 하는 것이 정말 완벽한 것이었느냐고. 이제는 그만 얼룩과 상처를 받아들이고 삶과 화해하는 것이 어떠냐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 각각이 모두 현실에 대처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죠. 사막의 가장자리에 지은 집에서 카펫에 생긴 빗물 얼룩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겐 그러한 모순 자체가 화해의 한 형식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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