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Jun 04. 2023

어느 날 느닷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뒤통수를 칠 때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들이 내 고통을 다 알지 못한다. 내색을 안 하면 알 수도 없지만, 설사 안다고 해도 그들이 내가 느끼는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고통은 철저히 개별적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남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말, 좋은 말이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온전히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김훈 작가의 <화장>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아내, 옆에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를 지켜보는 남편. 아내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지만 몸소 느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도 그가 겪는 고통을 내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내 고통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그 사람의 고통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아예 타인의 고통에 눈 감을 수 없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인간다움,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면서 지금 고통 중에 있는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그를 돕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아프고 나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삶이 주는 교훈은 즐거울 때보다 고통스러울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겪어야 할 시간은 별 차이가 없는데, 즐거웠던 순간은 짧게 느껴지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행복했던 순간은 곧 잊히지만 고통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느닷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내 뒤통수를 칠 때가 있다. 그때 넘어지는 건 내 책임이 아니지만, 포기하고 일어나지 않는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서명지 작가의 <여자 전투력>에 나오는 글이다.


삶이 주는 고난은 나의 통제 범위 밖에 있지만 어려움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여전히 내 것이고 내 책임이라는 말이다.


고통스럽다고 누구를 탓하거나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세상이나 신을 원망할 일이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 '나는 당신의 고통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힘들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러니 함께 노력하자. 꼭 이겨낼 수 있으니 힘내자!!‘

Diane Dal-pra                                 




매거진의 이전글 쓸쓸하고 외롭고 시름겨운, 달빛만이 함께 하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