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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3. 2023

쓸쓸하고 외롭고 시름겨운, 달빛만이 함께 하는 밤

"바람이 불면 더욱 쓸쓸하고, 달이 비치면 더욱 외롭고, 빗소리 들리면 더욱 시름겹다. 어찌해야 바람 불면 상쾌하고 달빛에 마음이 흥성(興盛)스럽고 빗소리에 기뻐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를 살았던 선비 유만주(兪晩柱, 1755 - 1788, 호: 흠영)의 1779년 8월 18일 일기의 일부이다. 그날 비가 왔다고 적혀 있다. 그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런 상념에 잠겼었나 보다. 자연의 소리도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心情)에 따라 쓸쓸하고 외롭고 시름겹게 느껴진다.


지난 5월의 마지막 밤, 이 문장을 읽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니 옅은 구름이 지나가면서 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자연이 때 묻지 않았던 그 시절만큼은 선명하지 않지만 분명 그건 '달'이었다. 흠영이 보았던 그 달...


달을 보고 있으니 흠영이 토로한 외롭다는 게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는 또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 몸이 홀로인 것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이며 천하의 지극한 고통이라고."




나는 '혼자'라는 말보다 '홀로'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있지 아니하고 동떨어져서'라는 뜻으로 둘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왠지 '홀로'라고 하면 스스로 택한 처연한 고독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벗조차 없는 것도 서글플 텐데, 타의에 의해 혼자가 되는 건 더 비참할 것만 같았다.


유만주가 살았던 시대, 그날 그는 많이 적적했었나 보다. 세상에 뜻을 펼쳐보고 싶었지만 과거시험은 자꾸 떨어지고, 담백하고 고아(高雅)한 성정에 딱히 어울릴만한 벗을 찾기 어려웠던 유만주, 밤이 깊어가듯 홀로 시름 또한 깊어갔으리라. 밤의 적막만큼이나 자신도 적막한 가운데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러고 보니 그가 살았던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밤은 맑고 고요하며, 밤을 둘러싼 풍경은 그윽하기만 한데, 마음은 처량하고 쓸쓸한 것 또한 그나 나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저 시선을 거두어 책상에 켜놓은 희미한 불빛 아래서 못다 읽은 책을 읽으며 밤이 주는 고요함 속에 흠뻑 젖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었으나, 그렇다고 마음속에 있는 오뇌(懊惱)마저 지울 길 없었다. 그 옛날의 흠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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