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으로 인한 어떤 고통이나
열정에 뒤따르는 절망도,
선명하고 생생한 공허함으로 인해
영혼이 침잠하는 느낌과는
비교할 수 없다."
언젠가 읽었던, 19세기 초 이탈리아의 시인인 자코모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 1798 - 1837)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메모해 두었던 건, 아마 그때도 오늘과 비슷한 마음이었기 때문일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바닥에 닿은 것 같으나 아직은 아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텅 빈 느낌. 고통이나 절망을 느낀다는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지만 영혼이 침잠하는 느낌은 어떤 것에도 자극을 받지 못하는 생명이 점점 메말라가는 공허함이다. 뭘 봐도 그저 그런 것도 그런 감정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사망 이전에 영혼이 죽어가면서 시작된다. 육체는 살아 있으나 왜 사는지 나만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소진해 가는 삶이 그것이다. 죽음이 이미 시작되었거나 아주 가까이에 있었던 것, 나만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을 알려면 먼저 내 안에서 죽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희망과 기쁨 그리고 설렘의 상실, 감사 무엇보다 생을 긍정하는 따뜻한 미소의 부재…
외부에서 오는 사소한 충격에는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도 내면에서 들리는 묵직한 울림에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것,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마지못해 기존의 삶을 답습하며 새로운 생각이나 시도는 더 이상 하려고 하지 않는 것,
어떤 것을 보고 들어도 도무지 감동이 없는 것, 감사보다 불평과 불만이 늘어나는 것, 타인의 아픔이라 상처에 무뎌지는 것, 과거와 미래에 얽매여 오늘을 충실히 살지 못하는 것 등등....
여기에 해당한다면 그 사람은 죽어가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살려면 반대로 하면 된다. 아니면 최소한 몇 개부터 반대로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선명하고 생생했던 공허함은 서서히 빛을 잃고 희미해질지 모른다.
성하(盛夏)의 계절을 앞둔 5월의 마지막 날, 나는 무엇으로 이 공허한 심사(心思)를 물리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제55회 백상 예술대상을 받은 배우 김혜자의 수상 소감, 꼭 나 들으라고 했던 말 같았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