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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6. 2023

오르막과 내리막 ㅡ 성장과 성숙

지난 주말, 여느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에 눈을 떠서 글을 썼다. 며칠 전까지 읽었던 책에 대해 나름의 내 생각을 글로 남겼다. 이른 시일, 여기에 그 글이 올라갈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새벽 미명의 어스름한 기운이 물러가고 환한 아침이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맑은 날, 서둘러 가벼운 운동복을 입고 인왕산 둘레길을 걸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면서 지난 시절을 생각했다. '맞다. 내 삶도 이랬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었고 평지가 있었으면 울퉁불퉁한 거친 길이 있었다. 오르막길은 힘에 부쳤고, 내리막길은 여유를 부리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인격의 성장은 더뎠으나 걱정하지 않았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성취와 성공에 관심을 쏟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영광과 상처를 뒤로한 채 여기에 이르렀다. 그 시절의 삶은 지나갔으나 모든 것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어떤 시간은 쓰라린 기억으로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기억과 추억을 양념 삼아 어떤 밥을 지을지는 전적으로 나한테 달린 일이다. 이제부터는 성장보다는 성숙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 없이 파란 하늘, 오랜만에 보는 파랗고 맑은 하늘이다. 가는 길목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렸다. 빌리기가 쉽지 않은 책도 있었다. 몇 번이나 빌리려고 했지만 누군가 빌려 가서 한동안 빌릴 수가 없었던 책,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읽지, 궁금하던 차에 마침 책이 있었던 거다. 이 책들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나는 독서만큼 사적인 경험을 알지 못한다. 독서는 읽는 사람의 마음과 문자로 쓰인 글 사이의 대화인 동시에 전적으로 홀로 마주하는 나만의 침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거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어떤 생각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정오를 넘어서자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아직 그늘로 가면 시원하지만 해가 비치는 곳은 더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부셨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어서 날이 맑아지기를 기대한다. 날이 맑으면 덥다고 하면서 그늘이나 시원한 카페로 숨는다. 이런 모순적인 행동 앞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여름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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