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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9. 2023

부유하는 먼지와 같은 존재인데도

집안 청소를 하면서 든 생각이다. 막상 청소를 하려고 하면 눈에 보이지 않은 먼지가 많아서 그런지 그렇게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우리집이 깨끗하다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사는 공간에 이미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흠이나 단점은 잘 보이지만 막상 내 단점을 찾으려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자기가 사는 공간에 대해서도 자신을 평가하는 것만큼 관대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이 늘 다른 사람을 향해 있어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는 것도 이유일 게다.  


청소기로 집안 구석구석을 밀고 나서, 먼지를 비워내기 위해 청소기 뚜껑을 열었더니, 이런?! 먼지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던 먼지가 어느새 뭉치가 되어 있었다. 먼지도 자기들끼리 합치니 눈에 보이는 실체가 되었다. 내가 이 먼지들을 마시고 살았다니,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먼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죽으면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소멸하는, 결국 먼지처럼 사라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덧없이 사라지는,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한 존재라는 말인가? 덧없는 인생을 비유한 말이지만, 인간을 먼지와 비유하다니 그건 좀 심했다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태초에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기 때문에 우리는 흙, 먼지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은 맞다. 왜 평소에는 이 사실을 잊고 사는 걸까. 먼지처럼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니면 죽음을 상상할 수 없어서? 살아 있는 동안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죽으면 내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니 죽음은 영원히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먼지와 같은 존재, 세상을 부유하나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는 존재, 내가 먼지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그동안 들었던 의문들이 이해되었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있기는 있었던가. 있었다면 어디에 있었는가. 형체는 있으나 실체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내가 먼지와 같은 존재에 불과했는데도 나는 마치 실체가 있는 양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살았으니, 이런 우매함이 없었다.


이런 생각에까지 미치자 청소기가 빨아들인 먼지가 새롭게 보였다. 곧 휴지통으로 사라질 운명이지만, 이 먼지들과 내가 다르지 않았다. 눈이 어두워 감각하지 못하고 살뿐이다. 아니면, 외면하고 살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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