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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30. 2023

선명함을 잃을 때 모든 존재는 쓸쓸함을 얻는다

"세상의 조도가 낮아지고, 지붕과 나무와 빈 그네에 침침한 그림자가 진다. 선명함을 잃을 때 모든 존재는 쓸쓸함을 얻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상대방의 마음이라는 건 도대체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 같기만 하고, 나는 ‘저녁’ 앞에서 노인처럼 어두운 눈을 비비는 것이다."


<한정원 ㅡ 시와 산책, 121p>




낮의 선명함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쓸쓸한 저녁이었다. 창밖으로 내리는 어둠을 바라보며 시인의 이 글을 기억했다.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오가는 사람들 모두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전투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쉴 곳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지쳐 보여도 갈 곳이 있다는 것만큼 큰 위안과 안식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했던가. 해석은 언제가 그르쳤다. 내 마음을 왜 몰라주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고, 눈치가 왜 그렇게 없는지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다. 가장 어려운 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었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며칠 전에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답답해서, 잠깐 사무실 주변을 걸었다. 거리에는 부쩍 늘어난 관광객들과 쇼핑을 위해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들 사이에 섞여 있으니 나라는 존재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친한 사이라도 오랫동안 보지 못하면 낯설어진다. 만일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면...


나는 오랫동안 나를 찾지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쳐다봤다. 낯선 이가 거기 서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낯설고, 나에게도 낯선 그런 존재. 시인처럼 눈을 비벼볼까? 그러면 낯설지 않아질까.


걷고 나니 땀이 배어 나왔다. 이른 더위, 땀은 좀 나지만 몸은 가벼워졌다. 몸이 가벼워진 만큼 마음도 부담을 덜었다. 정신이 피곤할 때는 오히려 몸을 더 피곤하게 하면 좀 나아진다는 말,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라도 나에게 익숙해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였다. 더 이상 낯선 존재로 남지 않도록 나는 나를 더 돌봐야 했다.


어느덧 하루해가 지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가고 있었다. 석가탄신일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그런지 시내 곳곳에 형형색색의 연등이 드높이 걸렸다. 마치 내 마음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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