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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13. 2023

그 무엇도 하찮지 않다고 말하는 마음이 ‘시’

가랑비로 시작되었다가 제법 빗발이 굵어졌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시작된 비는 토요일까지 길게 이어졌습니다. 비바람까지 불어 몇 걸음만 걸어도 신발과 바지가 젖었습니다. 비가 오니 평소 하던 산책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서 책을 읽었더니 몸이 찌뿌둥합니다. 비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비 때문에 집에서 또는 카페에 앉아 여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뭐가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화창했으면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을까요? 아니면 비 때문에 좀 더 많은 시간,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을까요? 세상 이치가 그렇듯, 당장은 알 수 없습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무엇도 하찮지 않다고 말하는 마음이 시'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에 하찮은 것이 있을까요? 하찮다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하찮아 '보이지만' 실제로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찮다고 생각해서 지나치는 것들을 소중히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통해 평소 눈여겨보지 않던 장소와 사물에서 시인들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저 역시 한때 세상을 쓸모와 유용한지 여부로 판단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쓸모가 있으면 중요한 거고, 나한테 도움이 되어야 하찮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이분법적인, 편협한 사고를 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고 나름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쓸모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한테까지 있어야 할 것도 아닙니다. 상대적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존재도 하찮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이 하찮을 뿐입니다. 와다나베 카즈코 수녀 또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습니다. 우리들이 하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찮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당장은 비가 와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고, 화창한 봄날을 즐기지 못했지만 무엇이 제게 유익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유익한지 유익하지 않은 지로 판단하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저는 그동안 이 틀 안에 갇혀서 제 생활의 면면을 판단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면, 가치중립적인, 굳이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매사에 저같이 살면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비가 멎었습니다. 비가 멎은 후에는 비 올 때의 상황을 더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출산의 고통을 잊듯이 말입니다.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 우리 마음일진대, 뭐가 좋은지 나쁜 지도 당장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굳이 따질 필요도 없구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비는 오고, 제가 예전에 자주 들었던 음악이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여기에도 올린 곡 같은데,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더 재패니즈 하우스(The Japanese House)'의 <Face Like THunder>를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비가 그친 것 같으니 이 곡을 다시 들으며 잠시 걸을까 합니다. 비가 씻어낸 세상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아마 싱그러운 봄 내음이 빗물에 묻혀 물씬 풍겨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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