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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28. 2021

시 선

Rumi/페르시아 수피 시인

얼마 전부터 에어팟 한쪽 부분이 잠깐 들어도 금방 방전이 되었다. 한쪽으로만 들으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러다가 며칠 전부터는 그 한쪽 부분이 아예 들리지가 않는다. 어제도 산책을 하다가 그런 증상이 있어서 답답해서 아예 빼버리고 그냥 걸었다.

정상일 때는 몰랐는데, 한쪽이 안 들리니 세상을 잃은 듯하다. 음악은 나에게 걷는 것 못지않게 중요했던 터라, 더 그렇다. 에어팟이 나온 이후 유선으로 이어폰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다시 유선으로 들으려니 거치적거려 차라리 안 듣게 된다.






아무 문제없이 흘러가는 일상이 사실은 소중했는데, 사소한 불편을 겪고 보니 그런 일상이 실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완벽한 날에는 그저 돛을 펼쳐라.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날, 

오늘이 그런 날이다." 


 <Rumi, 페르시아 수피 시인>





오늘이 아름다운 날일까? 루미는 어떤 의미에서 오늘이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날이라고 생각했을까? 루미가 살았던 시대나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나 인간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그는 어디서 아름다움을 찾았던 것일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살기 어려웠고, 훨씬 더 고단했을텐데도 말이다.  


'그 고단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도대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함께 철학자 등 지식인들의 화두였다. 물론 그 답은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한계를 지닌 인간의 시선으로 그 문제를 풀어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삶을 바라보는 내 '시선' 속에서 또다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는 삶 말이다. 


루미도 그 시선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뚜렷한 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지금 주어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는 있다. 그게 고단한 삶을 이겨내는 방법일 수 있다.  





우리는 선과 악, 행복과 불행... 늘 이분법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행복해 보여야 할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해하며 살기도 한다. 그래서 각자의 삶은 모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사람이 완전할 수는 없다. 어떤 일을 하는데 완벽을 기한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무엇을 해내는 것과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전자는 결과로 보여지지만 후자는 내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자세이고 과정이다. 물론 그 자체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역시 중요하다.


날씨가 무척 덥다. 그럼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맑다. 구름이 간간이 섞여 있지만 오히려 구름 때문에 하늘이 더 맑아 보인다. 구름이 인생의 어려움이라면, 그 어려움 때문에 우리 인생은 빛나는 것이 아닐까. 오늘 들었던 생각이다.





“삶의 행복을 겪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행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두 배로 행복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도 ‘로슈포르의 숙녀들, 25년 후’(1993년)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행복의 기억은 아마도 여전히 행복'일 거라고.”


<김영민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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