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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12. 2023

저항하면 할수록 더욱더 힘들어지는 것이 인생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남자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2016>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놓고 싶지 않지만 그만 놓아주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지난 시절 우리가 살았던 삶입니다. 그 속에는 사랑도 포함됩니다. 왜 아쉽지 않겠습니까. 왜 붙잡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붙잡는다고 달라질까요?


놓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 붙잡으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어떤 기대는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 무모하고 헛된 일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지만요.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건 한 순간입니다.


흐르는 물처럼 때로 흘려보내야 할 것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을 제대로 살기가 어렵습니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뭔가에 저항하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버틴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브 융의 말입니다. 놓지 않으려고 저항하면 할수록 그때의 기억은 선명해지면서 지금을 사는 나를 사로잡습니다.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하면 잊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먼 훗날에야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되지만요.




영화 속 주인공 료타(배우 아베 히로시)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해 떠난 사람과 지난 시절에 대해 연연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비참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과연 그 안타까운 심정을 그녀가 알까요? 아마 모를 겁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으면 잊기 때문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집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남을지언정 아픔은 희미해집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까지 지울 길은 없고, 저도 그런 때가 있으니, 료타를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며칠 전 읽은 채인숙 시인의 시집 <여름 가고 여름>에 나오는 시구가 떠오릅니다. 매정한 현실, 산다는 것이 이런 건지, 차라리 이럴 바에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료타도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움만 쌓였을 겁니다.



한 번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너를 견디느라

한 계절이 지났다



현재로 불러낼 수 없는 것도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절에서 어떤 것만 가능한 시절을 거쳐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시절을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때마다 희망은 절망이 되고, 기대는 실망으로 변하고, 젊은 날 지녔던 원대한 꿈은 소박한 일상의 삶으로 축소됩니다.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되지 않으려고 해도 되는 것이 있고, 아무리 되고 싶어도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우리가 살아왔던 삶입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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