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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4. 2023

변하지 않고 흐르지 않는 걸 사랑한다 ㅡ 그해 우리는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 나오는 주인공 최웅(배우 최우식), 그는 움직이지 않는 건물과 나무만 그리는 펜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가 사람을 그리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변하지 않고 흐르지 않는 걸 사랑한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도, 시간도 내 작품엔 없다."


처음에 이 말을 접하고 말은 멋진데 글쎄? 회의적이었다. 얼핏 들으면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사람이나 시간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 감정도 없는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인간이 변한다고, 인간을 배제한 사랑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시간은 인생의 본질이 분명한데 시간을 배제한 인간의 삶이 가능할까.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국연수(배우 김다미)로부터 상처를 받았던 그였으니까, 변하는 사람보다는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았을 터. 아마도 최웅은 다짐 비슷한 이 말을 통해 사람이 하는 사랑이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절망스러운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던 때. 사람들은 자신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상처가 상처를 낳는 현실. 내 상처만 아프고 상대의 아픔은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상처를 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상처와 아픔은 내 안으로 흡수해야 사라지지, 드러내면 어딘가 흔적을 남긴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때로 상처가 깊어 가슴에 황량하고 냉랭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냉소적이 되는 건 시간 문제. 나 자신도 변한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그 사람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 현실에선 기대할 수 없는 욕심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 역시 변한다.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 흐르지 않는 걸 사랑한다는 건, 어떤 흐름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세상 그 무엇도 흐르지 않는 건 없다. 사람인 우리도 우리가 했던 사랑도 모두 흘러간다.


그래서 중요한 건, 변한다는 사실보다는 변화의 방향이다. 어떻게 변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 냉소적이기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거칠어지기보다는 부드러워지려고. 튕겨내기보다는 품는 것으로. 비인간적인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를 바꾸어 가야 한다. 아마 최웅도 끝에는 이렇게 변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이렇게 고쳐 읽기로 했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변하고 흐르는 건 사람의 운명이다.

그럼에도 변하고 흐르는 걸 사랑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나 시간이 내 글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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