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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17. 2023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백 ㅡ 리틀 포레스트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본 지도 벌써 여러 번이다. 심사가 복잡할 때 가끔 보는 영화. 자연 속에 살면서 스스로 농사를 지은 식재료들로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주인공 이치코(배우 하시모토 아이)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뭔가 힐링이 된다.


딱히 줄거리랄 것도 없어서 어느 부분을 봐도 지장이 없다. 마치 하던 것을 멈추고 내가 하고 싶는 일에 집중하면 되는 것처럼.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특별히 긴장 관계나 갈등 구조도 없고 등장인물도 몇 명 되지 않는다. 단순한 스토리지만 이면에는 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  


며칠 전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치코는 왜 아무도 없는 고향에 내려왔을까. 혼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음식을 해 먹는데 요리를 해본 경험이 없는 젊은 사람에게 이게 가능한 일일까. 세상과 단절된 채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외롭지는 않았을까. 등등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본 영화가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다니, 이런 모순이 있을까?! 이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설명이 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아마 감독은 그런 부분은 몰라도 되니, 그냥 화면에 나오는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인적이 드문 곳,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진다. 나도 저런 곳에서 무위도식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거다.

누구는 이 영화가 재미없다고 푸념하고 나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적이지만, 오히려 지루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에 힐링이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면 그 지루함이 실은 의도된 지루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지루함은 내가 스쳐 지나갔던 '삶의 여백(餘白)'이었다. 그 여백을 발견했으면 뭘로 채울지는 당신이 결정하라고 감독은 말한다. 너무 바쁘게 살면서 여유가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를 보고 잠시나마 여유를 찾으라고 권하고 있었다. 예전에 나는 이 여백과 여유를 알지 못했다. 김영하 작가도 언젠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인지를.

그 간극을 감당하는 자만이 인생의 여백에

시라도 한 수 적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인생 자체가 하나의 간극임을.

그때는 정녕 알지 못했다."



영화의 틀을 결정하는 것은 알 수 없는 고통과 소망, 기억과 시간의 힘이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집중하고,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는 것, 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쉬는 것. 어찌 보면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일상 같으나 그 속에 묘한 삶의 철학이 숨어 있다.


나는 반대로 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할 때 쉬었으면 하고,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일을 염려하고, 밥 먹을 때도 휴대폰을 보거나 심각한 일 얘기를 하고, 쉴 때조차 쉬지 않고 뭘 할지 고민하는 삶. 내가 살았던, 편하지 않은 삶이었다.


영화는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그러니 뭘 하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저렇게 살자.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주어진 상황에 성실하자.'


밤에 이 영화를 보면 다른 영화와 달리 잠이 잘 온다. 아마 감독이 의도한 바가 이것일지 모른다. 고생했으니 이제 좀 쉬라는 것!! 걱정이나 염려 그만하고 손수 지은 따뜻한 밥과 자기 고장에서 자란 제철 음식을 먹고 원기를 충전하고, 푹 쉬라는 것이다. 내가 파악한 감독의 의도가 맞다면, 나는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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