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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4. 2023

혼자 살아서 혼자 살아야 해서 1

일요일 늦은 저녁이었다. 뭔가 살 것이 있어서 아파트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렀다. 슈퍼는 비교적 한산했다. 필요한 물건이 있는 진열대 앞에 서 있는데 마침 내 앞에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한 명 있는 것이 보였다. 그분이 먼저 온 것인지 아니면 후에 온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가 어느 순간 내 옆에 있었다.


안경을 쓰고 지적으로 보이는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쯤으로 돼 보이는 남성이었다. 깔끔한 셔츠에 면바지 차림으로 집에 있다가 나온 옷차림이 아니었다. 진열대 앞에서 뭔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내가 옆에 있는 것을 알아챘는지,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다.


"죄송한데, 혹시 이거 드셔보셨어요?" 뭔가 봤더니 메추리알이었다. 장조림으로 먹은 적이 있는 흔히 보는 메추리알. 언젠가 인터넷 뉴스(링크)에서 메추리알이 달걀보다 단백질 등 영양성분이 더 낫다는 기사가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이미 삶아서 봉지에 담아놓은 거라서 특별한 조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달걀보다 영양성분이 좋다고 하니 드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냐고, 사실은 자기는 혼자 살고 있어서 이런 거 잘 모른다고. 고맙다면서 메추리알이 든 봉지를 하나 사서 가는 것이다. 뒷모습에서 뭔가 여운이 남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내가 의외였던 것은, 그가 혼자 산다는 말 때문이었다. 나이로 보나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보나 배우자가 있을 법도 한데 아니면 최소한 자식들이라도 있을 텐데, 저 나이에 혼자 산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혼자 산다는 말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대수롭지 않게 하다니...

수명은 늘었지만, 늘어난 시간에 대한 준비는 부족하다. 언론을 통해 혼자 사는 노인의 비참한 노후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지만 아직 나한테는 남의 일이다. 가끔 은퇴한 후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지만 딱히 이게 맞다고 답을 내놓을 만큼 떠오르는 것이 아직은 없다.


이 문제는 돈이 많다고, 시간이 넘쳐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외국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것 같지도 않다. 최근에 마크 포스터 감독의,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온 <오토라는 남자, 2023>를 봤는데, (물론 영화가 다는 아니지만) 영화(링크)를 봐도 우리나 미국이나 나이 든 사람들을 귀찮아하고 꺼려하는 건 별 차이가 없었다.


주인공 오토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후 정년이 차 직장마저 잃게 되면서 점점 더 괴팍해진다.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생활에 지쳤는지 아내와의 지난 날을 회고하며 현재의 삶을 부정하려는 장면도 여러 번 나온다. 그 상황에선 더 이상 삶의 의욕을 갖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때마침 이사를 온 이웃과 이런저런 해프닝으로 얽히면서 오토는 서서히 변해간다. 그를 변화시킨 건 다름 아닌 이웃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인내. 결국 사랑의 힘이 완고했던 한 노인을 변화시킨 것이다.


오토는 주변 사람들에게 훈훈한 사랑을 실천하다가 편안히 생을 마감한다. 겉으로는 괴팍해 보였지만 원래 그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영화가 현실은 아니니 그렇게 여생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나이 든 사람들끼리 산으로 들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도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시끄럽고 다수의 위세를 빌려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봐도 노인들끼리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여유가 있다면 골프를 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도 마땅찮다. 죽을 때 가지고 갈 건 골프 스코어가 아니지 않은가. 남은 생의 대부분을 푸른 잔디 위에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가끔은 몰라도 썩 내키지 않는 선택이다. 무엇보다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운동이다.


이런저런 걸 따지고 나니 딱히 뭘 하면서 노년을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를 질문하기 전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만 자꾸 떠오른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노년을 보낼 계획인지, 그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면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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