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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15. 2023

사랑 앞에 우리는 모두 초보자일 뿐

영화 <비기너스, 2010>

'난 애나 이전에 4명과 진지하게 사귀었고 그 모두에게 상처를 줬다.'  


<영화 Beginners, 2010>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꾼다는 것. 모든 사람이 기대하지만 대부분 실패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여전히 오늘 같은 그런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영화 <비기너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그가 없는 시간을 견디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올리버(배우 이완 맥그리거)의 삶을 잔잔히 그리고 있다.

75세에 아내와 사별하고 암 선고를 받았지만 '이제는 숨겨왔던 사랑에 당당하고 싶다'며 뒤늦게 커밍아웃한 아버지(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 그리고 어려서부터 열정 없는 부모의 결혼 생활을 지켜보며 외로운 삶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새롭게 찾아온 사랑 앞에 머뭇거리는 아들 올리버, 집보다 호텔을 편안하게 여기고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올리버의 새 연인 애나(배우 멜라니 로랑), 이 세 명의 삶을 조용히 대비시켜 보여준다.


진지하다 보면 때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가볍게 스치는 인연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깊게 사랑하면 상처가 예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랑이 그런 것이 아니던가. 너무 좋아해서 내 뜻대로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는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운명의 장난같이 어긋나기도 하는 것, 그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나놓고 보면 사랑은 언제나 한쪽에서만 완성되는 미완성의 짝사랑으로 남을 뿐이었다. (한쪽에서만) 완성되는 미완성의 짝사랑, 언뜻 모순 같지만(물론 내 언어의 한계일 수 있다), 인간이 원래 모순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사랑했을까? 좋을 때는 아마 그렇게 느꼈을지도, 그러나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내가 한때 그를 사랑했었다는 사실 뿐.  


그래서 그런지 나는 처음에 언급한 올리버의 고백이 낯설지 않았다. 나도 올리버처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으니까.

"상처로 인한 슬픔과 고통은 애써 억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잃어버린 사랑을 기억함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조지 베일런트 교수의 조언이다. 사랑한 연인 사이에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그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을 잃기도 한다.  


10여 년 전, 영화가 개봉한 날 봤던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좋았던 순간들을 더 기억하고 있는지, 아니면 섭섭함과 원망의 마음이 들었던 순간들을 더 기억하고 있는지를. 쉽게 답하기 어려웠다. 그저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할 뿐.

깃털처럼 가볍게 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만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때로 상처를 안은 채 새로운 인연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기도 한다. 주인공 올리버처럼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면.


영화 제목처럼 사랑 앞에 우린 모두 초보자일 뿐. 실패하고 또 실패하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 그게 삶이고 우리의 사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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