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Apr 30. 2023

사랑은 열정이고 집착이야  ㅡ 조 블랙의 사랑

영화 <조 블랙의 사랑, 1998>의 주인공 윌리엄 패리쉬(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두 명의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둘째 딸 수잔(배우 클레어 폴라니)은 의사로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주는 유능한 드류와 사귀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언행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로 웃고는 있지만 의례적인 미소에 불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편해 보이지 않습니다.

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어느 날 아버지는 딸에게 묻습니다. 그와 결혼할 생각이냐고. 그러자 수잔은 "...어쩌면요."라고 말을 얼버무리고 맙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둘 사이에 아무런 감흥도 떨림도 없잖니. 어째 너희 둘은 열정도 없고 뜨뜻미지근한 것 같아. 마음껏 사랑해 봐라. 몸이 붕 뜨는 기분일 거야. 네가 기쁨에 겨워 노래하고 춤췄으면 좋겠다."


딸은 반문합니다. "그게 다예요?" "그래, 더없이 행복해야지. 아니면 마음이라도 열어두렴. 고리타분한 소리다만, 사랑은 열정(passion)이고 집착(obsession)이야. 그 사람 없이는 못 사는 거, 그게 사랑이지.


서로 죽도록 사랑할 그런 사람을 만나거라. 어떻게 찾느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면 돼. 지금은 네 가슴이 안 두근거리잖니? 사실 인생은 사랑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단다. 살면서 진실한 사랑 한 번 못 해본다면 제대로 산 것도 아니지. 그러니 노력해라. 노력 없이는 얻는 것도 없어. 늘 마음을 열어 둬라. 혹시 아니? 번쩍하고 좋은 일이 생길지(Lightning could strike)."

아버지는 자신이 그런 사랑을 했는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의 지난날이 못내 아쉬웠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딸에게 해준 이 말만큼 사랑에 대한 명료한 정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은 열정이고 집착이라는 것,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사랑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렸나요? 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나요? 그가 없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던가요? 오래전에 잊고 살았던 질문입니다. 사랑해서 만난 사이라고 해도,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렇다고 처음 만날 때 느꼈던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마저 없었다면 그 후의 관계는 더 많이 흔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습니다. 처음 순간의 떨림과 감흥이 변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세월이 흘러 우리 앞에 변질되거나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 또한 우리가 했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수잔이 영화의 주인공 조 블랙(배우 브래드 피트)을 만나는 장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조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금발의 청년입니다. 수잔은 커피숍에서 그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습니다. 얼굴을 아직 보지 않았지만 누군가 통화하는 목소리조차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조언한 열정을 느꼈고 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습니다. 조가 무슨 말을 해도 좋았습니다. 사랑에 빠진 수잔은 조 블랙이 좋았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그의 말이 세련되고 유창하다(well spoken)고 생각했으니까요.


운명의 장난일까요? 아버지가 그녀에게 해 준 말을 조 블랙도 헤어지는 순간 똑같이 합니다. 'Lightning could strike!!' 순간 수잔은 놀라고 그녀의 눈에서 알 수 없는 묘한 설레는 모습이 비칩니다. '아니, 이 남자에게서도 그 말을 듣다니. 이런 우연이?' 아마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좋았던 순간은 잠시, 이제 헤어질 시간입니다. 수잔은 병원에 일을 하러 가야 하고, 조 역시 새로 얻은 직장에 출근해야 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 약속도 하지 못한 채 서먹서먹하게 헤어져야만 하는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간절했습니다.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그렇게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자꾸만 뒤돌아봅니다. 시선은 어긋나고, 조는 건널목을 건너다 그만 차에 치여 죽고 맙니다.


사랑 역시 순간의 기회입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영화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겁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로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기회가 왔을 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그 기회를 기회로 알아볼 만큼의 혜안이 없습니다.

그렇게 둘 사이는 끝나는가 했습니다. 조가 죽어버렸으니 인연이 다한 셈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다시 만납니다. 그러나 그때 커피숍에서 만났던 예전의 조 블랙이 아닙니다. 몸만 조 블랙이지 영혼은 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승사자가 조 블랙의 몸을 빌려서 나타난 것이니, 수잔이 조를 다시 만났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수잔은 새로 나타난 조 블랙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물론 영화는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 역시 영화처럼 해피엔딩이진 않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큐피드의 화살처럼 내 마음에 꽂혔던 그 사람은 왜 지금 내 곁에 없을까요? 그리워만 하다가 떠나는 게 우리 인생일까요?


나이가 들어 그 사랑마저도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는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한 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지난 시절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한때 내 눈을 멀게 했던 그 눈부신 사랑을 말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노력하라고, 노력하지 않으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운명을 바꾸는 것도 바로 사랑이라고.'




오랜만에 리즈 시절의 브래드 피트를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물론 상대역인 클레어 폴라니(Claire Forlani) 또한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참, 뭔가 하나 빠졌네요. 수잔과 사랑에 빠진 저승사자. 그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도 데리고 가겠다고 하자, 패리쉬는 반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수잔은 아무 데도 못 데려가네. 자네가 좋아하니까 원하는 건 다 가지겠다니? 그건 사랑이 아니야. 목적 없는 욕정에 불과하지. 당장에야 욕구를 채우고 싶겠지만 중요한 건 다 빠졌어. 믿음, 책임 그리고 선택과 감정을 중시하고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며 여생을 보내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이네."


아, 제가 사랑의 요소 중에 언급한 두 가지 외에 몇 개를 더 추가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바로 믿음책임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입니다. 사랑의 이성적인 면이지요. 이제야 비로소 사랑이 완성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공간을 뛰어넘은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