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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6. 2023

슬픈 운명 앞에서 최선의 길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

지난 주말, 오랜만에 간 서촌.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이제 여름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었다. 또 한 번 찾아온 여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나는 서촌에서 로맹 가리의 책을 읽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는 동안에도 나와는 시공간이 달랐던 로맹 가리가 마치 옆에서 말하는 듯했다.


로맹 가리(Romain Gary, 1914 - 1980), 그는 원래 외교관이었다가 글을 쓰는 일로 자신의 직업을 삼았던 프랑스 작가이다.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대표적으로 <자기 앞의 생>이 있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고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였다. 그는 <인간의 문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며, 심지어 어느 곳에 이르게 될지조차 알 수 없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가 공유한 이 슬픈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서로를 존중하며 대하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자칫 무기력해지기 쉽다. 지나치면 냉소적으로 흐를 수도 있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생의 비밀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어쩌면 최선의 길은 나를 포함하여 서로를 끝까지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 모두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약하고 흠많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능력은, 바로 자신에게 자기 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실천하는 데 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한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의 형상을 닮은 우리 역시 사랑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로맹 가리의 말은 정확히 맞는 말이다.


세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변하지 않는 한,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적대적이고 비우호적이었음을 우린 역사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모순적인 현실과 상황이 세상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험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인 우리 자신이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나로 인해 바뀐다. 그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로맹 가리가 말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힘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다 보면 우리는 힘든 시기를 좀 더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다.


힘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힘들어하고 여전히 스스로에게 사로잡혀 있는 내가 문제인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나, 언제나 나에게서 시작해서 나로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랑 역시 나부터 시작해야지 다른 누구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서촌을 지나가는 하늘이 참 맑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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