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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0. 2023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줄리언 반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자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꼭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막상 뭘 하려고 하면 시간은 나를 휘몰아쳐서 일고의 여지를 주지 않았던 지난 시절, 시간이 느릿느릿 간다고 탓하다가도 막상 무엇을 할 때는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시간을 원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내 탓이었다.


이제 시간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상실감, 자괴감이다. 줄리언 반스의 말처럼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주며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고 하다가도 어느 순간 내 무릎을 꺾어 굴복시키고 마는 것, 그게 지난 세월이었고 내 삶을 관통하고 있는 시간의 힘이었다.


편리와 효율만을 추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사라졌고, 나 자신에게는 뜨거웠지만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온기는 잃고 말았다.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여유를 찾든 안 찾든 상관없이 시간은 흐른다. 이미 내 곁을 떠난 연인처럼 붙잡을 수도 없다.


이 글을 읽고 이제부터라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 세월의 무게를 잘 감당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월이 남긴 부담감과 상실감도 지우고 싶다. 결론은 역시 시간과 다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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