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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16. 2023

새로운 시선 ㅡ 세계의 확장

걷는 이유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어딘가 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 걷지만, 건강을 위해서, 긴장을 풀기 위해서, 주변을 관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걷는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걷기는 어려운 일이다. 힘들고 무엇보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동 수단이 발달한 요즘, 우리는 과거 우리 조상들보다 덜 걷는다. 효율로만 따지면 걷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삶이 효율과 비효율로만 따질 수 있는가?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걸으면서 정리되는 무언가도 있다. 고요한 방에 앉아서 정리해야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걸으면서 정리할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특히 기분이 처지거나 우울할 때 걸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나는 얼마 전까지 건강 때문에 걸었다. 굳이 주변 사물이나 풍경에 눈길을 줄 이유가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빨리 정해진 목표량을 채우고 집에 가서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도 그다지 나아진 건 없지만 그때보다 주변을 살피면서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걸었던 많은 시간들이 허공으로 붕 뜬 채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이다. 이제는 계절이 어떻게 변화하고 자연은 어떻게 호응하는지 눈여겨보고 싶었다. 오랜 시간, 반복해서 걷다 보니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어느 순간부터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곤충의 미세한 움직임 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잠시 멈춘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주변을 살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충실히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생명체를 눈여겨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별생각 없이 지나갈 때 보지 못했던 그들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스치면서 보는 것과 주목해서 보는 것과의 차이였다.




“산책하다 말고 쭈그리고 앉아 꽃 사진을 찍다 ‘너도 나이 들었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의 말대로 이제야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꽃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계가, 나와 인간이 중심이 아닌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라면서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조각이기도 하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발견한 새로운 세계이기도 하다. 세계의 확장이었다.”


우숙영의 <산책의 언어>에 나오는 글이다. 그동안은 내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였다면, 이제는 내가 아닌 주변 존재들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나는 그중에 일부임을 깨닫는다. 관점이 바뀌니 당연히 보고 듣는 것이 다채로워졌다.


그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의 확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도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중심에 있다고 착각할 때 볼 수 없던 것들이 그 생각을 버리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대상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보이는 것들도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자연을 통해 다시 나를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건을 통해 나를 성찰할 힘을 얻게 되었다. 걷기를 통해 얻은 새로운 시선, 시선의 변화였다.

“산책길에 나뭇등걸을 보았다. 많은 사람이 쉬어 갔는지 조금 매끈하다. 그루터기에 앉는 대신 가만히 옆에 앉아 손으로 나이테의 흔적을 따라 그렸다.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읽었다. 마주 닿은 손끝을 통해 나무도 읽었을지 모르겠다. 살아온 대로 기록된 날것의 인간 삶을.”


<우숙영 ㅡ 산책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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