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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8. 2023

뭔가 달라지고 싶을 땐 풍경소리를 들어

구효서 / 풍경소리

세상이 주는 불규칙한, 모난 소리에 지친 한 사람이 조용한 산사를 찾았습니다. "뭔가 달라지고 싶을 땐 성불사에 가서 풍경소리를 들어..." 친구의 조언으로 온 성불사. 그녀는 과연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풍경소리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풍경소리를 들으면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요?


구효서 작가의 소설 <풍경소리>입니다. 일상의 삶에 지쳐 있던 주인공 미와는 친구의 조언대로 성불사에 가서, 평소 사용하던 노트북 대신 노트에 연필로 이것저것을 적으며 풍경소리를 들으려고 애씁니다.


"... 소리라면 연필이 노트 위를 지나는 소리와 푸른 창호지에 검은 그림자로 어른거리는 풍경소리뿐. 적막이 적막 속으로 아주 사라지려 할 때마다 풍경이 한 번씩 울어 적막이 적막으로 남아 있게 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성불사, 그곳에 있어도 그녀는 지난 시절 자신을 스쳐갔던 사람들과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장소가 바뀌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성불사가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그나저나 키가 콩나물처럼 길고 밋밋하고 성격 안 좋고 눈 딱부리고 퉁명하고 어리석은 나를 그는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걸까. 이래저래 나는 잠 못 이루고, 모두가 잠든 성불사 깊은 밤에, 처마 끝 풍경소리를, 홀로 들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소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 순간순간마다 많은 소리를 듣고 살아갑니다. 단 한순간도 조용한 적이 없는 도시에 살다 보면 오히려 소리에 민감해지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소리 없이 살 수 없을까를 고민합니다. 많은 소리를 들으나 어떤 소리도 남는 건 없습니다. 오히려 소리는 공해가 되어 평온한 일상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저 흘려보내기 바쁩니다.


산사에서 나무들이 내는 소리, 풀벌레가 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미와처럼 당장 성불사에 갈 형편이나 여유는 없다면, 잠시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단절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결국 내 중심의 문제니까요.


소설은 주인공이 성불사 주지와 스님들, 그리고 성불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딱 떨어지는 답은 없습니다. 풍경소리는 결국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외부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주인공에게 조언한 친구의 말도 결국 조용한 곳에 가서 너만의 소리, 내면에서 울려오는 자아의 외침을 들으라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풍경소리는 결국 내 마음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고요한 산사에 가도 번잡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반면,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 있어도 조용한 풍경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장소나 상황이 아니라 상황이나 주변 환경을 대하는 내 마음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지 않고는 어떤 소리를 들어도 소음에 불과합니다. 고요한 산속에 있는 성불사에서도 시끄럽고 불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장소가 주는 유익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불사'라는 고립된 공간에서는 왠지 청량한, 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기대가 나를 서서히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서서히 바뀌어 갑니다.


풍경소리를 들으면 뭔가 달라집니다. 풍경소리는 바로 내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소리입니다. 성불사라는 장소에 가야만 들려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리가 바로 성불사였기 때문입니다. 성불사는 집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 마음이 평화로울 때 들리는 소리가 바로 '풍경소리'니까요.




“발을 내딛는데 소리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멀고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풍경소리가 점점 맑아져서

나는 그 풍경소리에 더 많은 것을 의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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