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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7. 2023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권여선 / 각각의 계절

점점 더워지는, 봄을 훌쩍 건너뛰고 여름으로 치닫는 요즘, 문득 지난겨울이 떠올랐습니다. 무척 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기억마저도 때 이른 더위 앞에 이젠 희미해집니다. 언제 그렇게 추웠었나? 하는 마음이 드는 거지요.


계절은 각각을 살고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대로입니다. 계절이 힘을 잃을 무렵, 우리는 또 다른 계절을 맞습니다. 그냥 봄이 가고 여름이 왔네, 이 정도 생각을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는 세월이 무심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무상(無常)한 시간의 반복이지만 계절은 또 다른 변화의 연속입니다. 봄이 온전히 봄다워야 여름이 오듯이, 계절만이 계절답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여름에는 겨울을 기억하지 못하고, 겨울에는 여름이 과연 올까 하는 의구심을 품습니다. 지금 덥다 덥다 하지만 이 순간이 지나면 우리들 중 누구도 지금 이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잊는 것, 어쩌면 이게 우리의 본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번 잊기 때문에 이 계절을 나려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권여선 작가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라는 단편소설을 읽었습니다.  


험난한 시절을 살았던 마리아, 그럼에도 암울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담담히 살아낸,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살핀 그녀는, 어쩌면 우직하지만 성실하게 자연의 파괴와 환경오염이라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버터 내고 있는 이 계절을 닮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오래 남았습니다.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계절을 제대로 살려면 각각의 힘이 들고 필요하다는 말, 계절의 변화만큼 우리도 끊임없이 변해야 하고, 변하기 위해선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말이라고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어쩌면 무기력한 일상을 반복하기 위해선 다시 힘을 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진정한 힘은 그 새로워진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마음이 지치면 몸도 지치고 더는 힘을 낼 수 없게 되니까요.


권여선 작가는 최근 자신의 단편소설을 모은 <각각의 계절>을 내면서 책 제목을 이 마지막 문장에서 따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살면서 보니, 어느 시절을 살아내게 해 준 힘이 다음 시절을 살아낼 힘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다음 시절을 나려면 그전에 키웠던 힘을 줄이거나 심지어 없애거나 다른 힘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 독자 여러분도 새로운 계절에 맞는 새로운 힘을 길어내시길 바랍니다."


어느덧 화려한 봄날은 지나가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오면 화창하고 따뜻했던 봄날이 언제 있었나 싶을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계절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습니다.


계절은 늘 새로워지지만 우리는 한 계절만큼 나이를 먹었을 뿐, 모든 사람들이 다 새로워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계절이 보낸 시간만큼 변해가는데, 우리만 모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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