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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2. 2023

삶을 품은 문장들 ㅡ 새로운 시선을 찾아서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요 며칠 무척 더웠습니다. 낮에는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어섰고, 습도까지 높아 밤에도 좀처럼 열기가 사라지지 않아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109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뜨거운 하루였다. 세상이 보온밥솥에 담긴 밥 한 그릇 같던 날씨. 사람들은 찐득하게 엉긴 밥알처럼 서로를 못 견뎌했다. 무자비한 태양이 산 너머로 사라진 후에도 열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밤늦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교복도 벗지 않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몸에 간신히 남아 있던 영양분이 모두 바닥난 느낌이었다. 여름도 겨울도 잔인하다."



어느덧 7월, 이젠 뜨거운 한여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아마 저라면 이 정도 표현하는데 그쳤을 겁니다. 아니면 '찌는 듯이 더운 하루, 마치 땀이 비 오듯 하는...' 이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겠네요. 역시 작가는 달랐습니다. 단 한 줄을, 그것도 직설적으로 쓸 정도의 상상력밖에 없는 저는 작가의 수려(秀麗)한 표현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글은 최대한 간결히 필요한 의미만 전달할 수 있도록 요점만 써야 합니다. 직업이 법조인이어서 그런지 저는 짧고 간결하게 쓰는데 익숙합니다.


검사들이 기소할 때 쓰는 공소장만 하더라도 6하 원칙에 따라 꼭 필요한 문장만 씁니다. 오히려 길게 쓰거나 불필요한 문장이 있으면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하거나 불필요한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잘 쓴 공소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검사들이 자주 쓰는 보고서만 해도, 가급적 조사는 생략하고 개조식으로 페이퍼 한 장 안에 모든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나 소설이나 문학은 다릅니다. 여름을 묘사할 때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문장을 통해 덥고 뜨거운 기운을 느끼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비유와 은유 등 여러 기교가 동원되는 만큼 문장은 깊어지고 감각적이 됩니다.


우리 삶도 이런 문장을 닮았습니다. 단순 명료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던가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복잡하고 애매해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도 많습니다. 내 마음을 전달하거나 상대를 납득시키지 못해 답답한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우리 삶을 간단히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말의 진정성이 의심스럽습니다. 때로 거짓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문장이 비유와 은유를 통해 풍부해지듯이, 인생 또한 많은 은유와 비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만 모를 뿐입니다. 삶의 곳곳에 숨어 있는 비유와 은유를 어떻게 찾아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러려면 나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나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자료는 인간의 삶을 묘사한 작가들의 문장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요즘,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생각을 정확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물론 글에 제 진심을 담아야 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저는 제가 쓴 문장에 대해 늘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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