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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7. 2023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서

최진영 ㅡ 구의 증명

"나도 모르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좀 더 좋아질 미래가 아닌,

가장 나빠질 경우부터 상상하는 버릇이 생긴 게."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에 나오는 주인공 '구'의 독백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떠안아야만 했던 다른 사람의 삶. 그 족쇄에 걸려 스스로 찾아야 할 자신의 삶을 잃고만 '구'. 그를 사랑하는 '담'. 그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담은 말한다.


"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만 겪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조상들의 전쟁에 휘말려 평생을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나 질병은 선택 문제가 아니다.


나는,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를 게 없었다. 그건 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삶이 짐처럼 느껴질 때, 그때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에 이 글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뒤덮인 곳을 마치 시각장애인처럼 방향을 잃고 서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누군가'는 나보다 이 삶을 훨씬 더 힘겨워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아닌 그 '누군가'를 상상하지 못했다. 상상력의 부재, '누군가'의 현실에 대한 무관심이자 외면이었다.


담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구도 안쓰러웠고. 도무지 그들에게 답이 보이지 않았다. 나의 짐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부른 고민, 나는 도무지 아는 게 없었다.


'이런저런 생활의 지혜 같은 것은 기가 막히게 잘 알면서도, 자기 삶을 관통하는 아주 결정적인 사실은 모른 채로,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았던 것이다.' 담의 고백을 듣고 심히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구는 마지막 순간, 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나 끝내 하지 못하고 죽었다. 유언과도 같은 말,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사랑하는 담을 두고 떠나야 하는 구의 안타깝고 애틋한 심정이 왠지 그의 일만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에게 담은 살아야 할 이유였다. 그들의 사랑 앞에 죽음마저 무력해졌다. 구는 이 글을 통해 담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 셈이다.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온갖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대. 근데 거기 희망은 왜 있었을까. 희망은 왜 나쁜 것을 모아두는 그 항아리 안에 있었을까.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이 말을 왜 해주고 싶었냐면, 나는 희망 없이 살면서도 끝까지, 죽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그건 바로 담이 너 때문에.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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