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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10. 2023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최진영 / 홈 스위트 홈

최진영 작가의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을 읽게 된 건 이 작품이 올해 이상문학상(대상)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읽었던 <구의 증명>에 대한 느낌이 강렬해서 작가의 다른 소설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편이라 소설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 그녀는 어릴 적에 살았던 집에 대한 추억을 찾아 시골에 버려진 폐가를 수리해 살기도 한다.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의 기억에 대한 관념과 삶에 대한 은유와 집착이다.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두고 갈 것." (최진영, '홈 스위트 홈', 37쪽)



나에게도 천국이 있다면 과연 그 천국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도 있다. 예수는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니 천국은 우리 안에 있다.' (누가복음 17:20 - 21).  


주인공이 그린 천국도 아름답다. 가만히 읽고 있으면 그녀가 살면서 느꼈던 삶의 아름다움과 보람 그리고 사랑이 그려진다. 그녀처럼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천국을 찾는다면 못 찾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동안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잊어버렸던 수많은 아름다운 기억들,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일상의 소중했던 순간들, 나만의 천국은 그렇게 사라졌다.


한편, 주인공이 생각하는 천국도 중요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천국은 약간 결이 다르다. 나를 끊임없이 고쳐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고, 그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나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따뜻하게 보듬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지는 것.


천국은 나만 잘 산다고, 행복하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것이 천국이라면 내가 죽으면 그 천국 역시 소멸하고 만다. 천국이 나에게만 머무는 거라면,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라면 과연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천국은 최소한 우리의 생명보다 길던지 영원해야 한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진 천국이라면 다르다. 내가 죽어도 살아있는 그들을 통해, 또 그들이 죽더라도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 천국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를 통해, 예수를 본받은 제자들과 스데반을 통해, 그리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도 바울을 통해 천국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것처럼.


나로 인해 세상이 아름답게 변하고 그 세상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나로 인해 자신의 천국을 찾아간다면, 그게 바로 내가 찾고 싶었던 진정한 천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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