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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30. 2021

열리지 않는 문

나쓰메 소세키/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 후>, <마음>부터 그의 에세이까지 읽은 적이 있다. 일본이 배출한 위대한 작가인 그는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작품들을 썼다.


그의 소설의 장점은 노골적이지 않다는 거다. 이 소설 <문(門), 1911>만 해도 친구의 연인을 빼앗은 사연이 등장한다. 그러나 치욕스럽지 않다. 얼핏 보면 이게 그런 의미인가 싶을 정도로.





소설은 친구를 배반한 후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는 남자의 어두운 내면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소스케는 관청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며 아내 오요네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간다. 사연이 있지만, 그들은 서로 언급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을, 조용히 살아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소소한 일들이 발생하지만 눈에 띌만한 사건도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작가가 왜 제목을 <문>으로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목과 관련된 어떤 사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들의 과거가 언급된다. 오요네는 사실은 소스케의 친구였던 야스이의 애인이었던 것이다. 친구의 연인을 빼앗은 셈이 되어 버린 소스케는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런 친구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다.


소스케는 우연히 집주인 사카이의 동생이 그의 친구 야스이와 함께 집주인의 집을 방문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야스이와의 만남을 피할 겸 자신을 붙잡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사를 찾아간다. 물론 이곳에서 찾아지지 않는 답이 그곳에 간다고 찾아질 리 만무하다. 결론은 그렇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끝난다. 한 번 닫힌 문은 쉽게 다시 열리지 않았다.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머릿속에서 분명히 마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열 힘은 조금도 키울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서 있는 장소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과 손톱만큼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닫힌 문 앞에 무능하고 무력하게 남겨졌다.'


마지막 문단이 이 소설의 결론이라면 결론이다. 산사에서 돌아온 후, 드디어 봄이 돼서 다행이라는 오요네의 말에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라는 소스케의 말에서 그의 체념과 한계를 엿볼 수 있다. 과연 우리라고 소스케와 다를까.





얼핏 줄거리만 보면 별게 없다. 소스케의 어두운 내면을 따라가기 전까지는. 아마 작가는 소스케를 통해 인간의 구원은 스스로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구원은 찾아가는 과정이지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어쩌면 소스케는 세월, 즉 시간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었는지 모르겠다.


“오늘까지의 경과로 미루어보아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세월이라는 격언을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이끌어내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상처는 시간으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월을 의지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괴로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때로 세월 앞에 저항하지만 세월에게 전권을 내줄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이다.





소스케의 절망, 문제에 대한 답, 즉 문을 찾을 수 없다는 체념에서 그가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작품 이후 다시 어떤 소설을 썼을까. 우리 인생이 답이 없듯이, 답이 없는 것도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으면 모를까. 어쩌면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에 대한 이 말이 해답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그들이 매일 같은 도장을 같은 가슴에 찍으며 긴 세월을 질리지도 않고 살아온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일반 사회에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었다. 사회가 그들 둘만을 떼어내고 차갑게 등을 돌린 결과일 뿐이었다. 


외부를 향해 성장할 여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내부를 향해 깊이 뻗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넓이를 잃음과 동시에 깊이를 얻었다."


코로나19 시대,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외부의 힘으로 삶의 일부분을 잃었다. 넓이였다. 어차피 인간의 탐욕으로 잃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맞아야 할 상황을 지금 당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젠 넓이를 잃는 대신 삶의 깊이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코로나19로 달라진, 앞으로 달라질 시대를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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