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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8. 2023

무심히 살았고 무심히 자주 지나쳤다

그제는 새벽에 시작된 비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좀처럼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 비 때문에 뜨거운 열기는 식었지만 습도가 높아 여전히 더웠다. 잠깐 걸어도 땀이 배어난다.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와 달리 바깥은 비가 오는 것까지 감안하면 걸어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날씨 탓인지 월요일인데도 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비까지 오니 잘 움직이지 않게 되고 만사가 귀찮았다. 사무실에서 비 오는 거리 풍경을 보다가 하늘을 봤다.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분명히 저 속에 해가 있을 텐데, 해의 존재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는 하늘에 뜬 해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가 어제처럼 구름 위로 숨으면 그때야 비로소 뭔가 아쉬워진다. 어디 해만 그런가. 가까이 있는 존재, 흔히 접하는 물건, 매일 보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별로 관심을 지 않았다. 막상 없으면 아쉬워하고. 무심히 살았고 무심히 자주 지나쳤다.




다행히 퇴근 후, 밤에는 비가 소강상태를 보였다. 몸도 찌뿌둥해서 평소 가던 길을 걸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산책을 하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잔뜩 습기를 머금은 숲 속에선 비와 섞여 짙은 풀냄새가 나고, 나무와 이름 모를 풀과 꽃은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에 사는 동물들도 비를 피해 어딘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오랜 기간 비바람이 치는 장마철이 힘든 시기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와는 달리 별 불평 없이 묵묵히 살아가니 과연 만물의 영장인 내가 저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땅이 젖어 있어 걷기 불편했다. 쓰다 보니 여전히 나는 불편함, 거추장스러움만을 생각하고 있으니 한마디로 구제불능이다. 비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걸어서 좋았고, 덥지만 무탈하게 지나간 괜찮은 하루였다고 생각을 고쳐먹어 보지만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조그만 불편함에도 인상을 찌푸리는 나를 보면서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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