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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7. 2023

어떤 애수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나요?

한밤에도 지속된 무더위 때문인지 월요일 일찍 깼다. 새벽 이른 시간, 밖은 아직 어둡다. 비가 오고 있었다. 제법 굵은 비였다.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일기예보가 정확히 맞은 셈이다. 마치 습기를 빨아들인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이다. 당장 출근길이 걱정되었다. 운전을 하고 다니니 사람들과 부딪힐 일은 없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아무래도 차가 더 막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톨스토이의 <가정의 행복> 세르게이 미하일리치와 결혼한 마샤, 꿈만 같았던 신혼은 지나가고 어느덧 서로에게 익숙해진 이들 부부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심해진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자연을 향유하며 어떤 애수 같은 것을 느껴본 적 없나요? 마치 뭔가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지난날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하는 마음 같은 거요."


마치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면서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월요일 새벽부터 이런 마음이 들다니, 저 책을 읽으면서 마샤에게 너무 깊이 몰입한 탓일까. 어쩌면 저 문장이 나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어떤 상실감을 건드렸는지도 모르겠다.


흘러간 것은 아름답다. 실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아름답게 채색한 것이다. 내가 살았던, 경험했던 내 삶이기 때문이다. 이 비도 언젠가는 그치겠지만 그 흔적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할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곧 잊히고 말 터, 안타까움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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