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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20. 2023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

글 내용이 가볍지 않은 건, 아마도 내가 주로 무거운 주제의 책을 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원래 심각한 사람이던가. 얼마 전에 읽었던 책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위대한 소설이지만 책 내용이 무거운 건 사실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도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지루한 이야기>이다. 사는 것도 지루하고 팍팍한데 책 제목까지 지루한 이야기라니, 읽으면서 나도 지루해졌다. 책이 지루하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지루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는 비교적 가벼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도쿄기담집>을 읽었다. 하루키는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하나레이 해변>에서 남자가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해 여주인공 사치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어.

첫째, 상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것.

둘째, 옷차림을 칭찬해 줄 것.

셋째, 가능한 한 맛있는 걸 사줄 것.

어때, 간단하지?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된다면 얼른 포기하는 게 좋아."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이라니, 귀가 솔깃하지 않은가. 아, 저대로 해 볼걸. 하루키의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의 행동을 칭찬해 주고, 먼저 베풀면 그와 잘 지낼 수 있다. 굳이 세 가지 외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진심, 즉 진정성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는 사람만이 이 세 가지 방법대로 할 수 있다. 세 가지 방법대로 하더라도 다른 흑심이 있거나 일시적으로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러는 거라면 곧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하여,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진심은 중요하다.  


진심은커녕, 여전히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말도 안 된다며 중간에 자르고,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핀잔이나 주고, 경제적인 이해타산에 얽매여 내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할 때가 적지 않다. 당연히 그런 남자를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문제는 꾸준함이다. 초기에 잘 보이려고 그럴 수는 있다. 친해지거나 익숙해지면 그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반대로 한다. 그러니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들이 서로에게 심드렁해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간단하다고 하지만 막상 현실에선 실천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꺾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번 만나지 못하고 끝나는 건 대부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하루키는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된다면 포기하라고 하지만 좋은데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나는 바뀌지 않으면서 사랑은 하고 싶고, 참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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