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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25. 2023

정작 우리 안의 악(惡)은 보지 못하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악마>, 제목이 악마라고 해서 실제로 악마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 악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의 반대편을 지칭한다. 인간은 때에 따라 선한 사람으로 살기도 하고, 악하게 살기도 한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현실과 당위(도덕) 사이에 놓인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예브게니 이르티네프. 그는 귀족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정부 내각에서 일하는 장래가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그러하듯,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젊고 건강한 젊은 미혼 남성들처럼 별다른 죄의식 없이 여러 여성들과 자유분방한 관계를 맺었다. 


상속받은 영지를 경영하기 위해 시골에 가게 된 그는 여러 일들을 처리하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간다. 도시와 달리 시골에선 성적 욕구를 해결할 방법이 없자, 급기야 그곳에 사는 유부녀 스테파니다와 관계를 맺게 되고 결혼 전까지 그런 생활이 이어진다. 


문제는 결혼을 한 후에도 그녀에 대한 유혹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사실 유혹이라고 표현했지만 다윗이 밧세바에게 미혹되었던 것처럼, 그 스스로 그녀에게 미혹된 것이다. 그녀를 피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연유인지 그 앞에 종종 나타나는,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띠며 그를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그녀 앞에서 그의 의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는 급기야 중대 결심을 한다. 그녀를 죽이든지, 아내를 죽이고 그녀와 같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이 죽든지. 그는 끝내 자결을 선택한다. 욕망을 이기지 못한 자신에게 절망하면서 내린 결정이다.


"그는 총구를 관자놀이에 갖다 대고는 잠시 주저했다. 스테파니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결심, 자신과의 싸움, 유혹, 발작, 또다시 자기와의 싸움, 그 모든 걸 떠올리자마자 온몸이 공포로 부르르 떨렸다. '아니야, 이 편이 더 나아.'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다.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지만 아무도 동의하지 못했다. 한 인간의 내면의 고통과 욕망을, 자기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자의 끝없는 절망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지켜보면서, 내 안에 감추어져 있는 욕망에 대해 생각했다. 욕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욕망의 한계, 즉 도덕과 욕망이 충돌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이다. 욕망을 이겨낼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피할 수 있을 뿐. 피한다고 피했는데도 이르티네프처럼 욕망의 대상이 눈앞에서 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르티네프처럼 자신의 목숨과 바꿀 정도로 솔직하고 무모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내가 그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톨스토이가 위대한 작가인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뭔가 들킨 것만 같은, 폐부를 찌르는 아픔을 준다는 거다. 주인공이나 나나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이렇다. "사실, 예브게니 이르테네프가 정신병자였다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정신병자일 것이다. 진정한 정신병자는 타인에게서 광기의 징후를 보면서, 자기 자신에게서는 똑같은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정상인가, 정신병자인가. 


"우리는 악을 본질적으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범죄자, 불량한 경찰, 부패한 정치인, 빈둥거리는 젊은이들... 항상 악은 다른 사람입니다. 바깥세상에 존재하는 악에 대해서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지만, 정작 우리 안의 악은 보지 못합니다." 


캐나다 출신 작가 얀 마텔이 <101통의 문학 편지>에서 한 말이다. 나 역시 내 안의 악은 여전히 보지 못한다. 아니면 무뎌딘 채 외면하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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