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Aug 02. 2021

잊혀지는 존재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


지인의 죽음은, 인연의 깊이를 떠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슬픈 일이다. 부재에 따른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슬픔은 오래가지 않는다. 일상으로 복귀하면 곧 잊혀진다. 잊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망각을 허락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에는 마리우스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리우스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파리로 돌아와, 자기의 아버지가 아예 존재한 적도 없다는 듯이, 더 이상 아버지 생각은 하지 않고, 다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대령은 죽은 지 이틀 만에 매장되었고, 사흘 만에 망각되었다."





죽은 지 이틀 만에 매장되었고, 사흘 만에 망각되었다니, 인간이 이렇게 허무한 존재이던가.


마리우스는 어려서 아버지와 헤어져 할아버지 손에 키워졌다. 그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추상 속에 머물렀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기억된 바 없다. 그래서일까. 그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 슬퍼하거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피를 나누었다고 가족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가족이라는 것을 마리우스의 태도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친척을 포함해서 지인들이 떠나는 자리를 지켜야 했다. 나이가 드니 그 세월만큼 내 곁을 떠나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간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도,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느껴야 했던 마리우스의 외로움, 그런 마리우스가 안쓰러웠지만, 마지막 순간에 하나뿐인 아들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니 그 또한 안타까웠다. 운명의 장난 같은 두 사람의 관계...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부자간에 느껴야 할 슬픔조차 슬픔으로 느낄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슬픈 일이다. 훗날 자신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때를 회상하며 느껴야 했던 비애와 비통함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으리라.





한편으로 세월의 무상함 앞에 씁쓸해진다. 마리우스의 아버지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자신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죽음은 살아 있는 자에게 선뜻 와닿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다.


재벌,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이 죽으면 문상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나 그뿐, 그도 곧 잊힐 것이다. 죽음 앞에선 모두 똑같다. 그렇게 우리는 언젠가는 잊혀지는 존재다. 우리가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듯이, 언젠가 내가 죽으면 남은 자들도 나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남은 시간, 제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얼마가 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생엔 저마다 감당해야 할 수레바퀴 시계가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홀로 떠나고 홀로 남는다. 이별을 생각하면 사랑이 더 귀해진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고 하지 않던가. 삶과 죽음은 결국 한 몸이다." <김선우, 시인>






영화 <Troy, 2004>에는 아킬레스의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신은 인간을 질투하지.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게 있거든. 인간은 늘 마지막 순간을 살지. 그래서 인간의 삶은 아름다운 거야."


잊혀지는 존재임에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언제 죽을지 모르니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실은 마지막 순간이다. 이 순간을 살지만, 내일까지 산다는 보장은 없다.


원래 아름다움은 찰나의 기억이다. 영원한 것, 지속되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짧은 한 생을 사는 인간의 삶이 아름답다고 한 것이 아닐까. 꽃이 한 계절을 피고 지듯, 그래도 그런 꽃을 아름답다고 하듯, 인간 또한 다를 바 없다.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죽음이고, 

웃음을 값지게 하는 것은 눈물이며, 

사랑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이별이다. 


삶에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래서 모든 경험은 인생에 관한 수업이다. 


<김은주 _ 1cm 첫 번째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여 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