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회/아무튼, 여름
"지극히 사사로운 여름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별게 아니다. 여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순수한 기대라는 것. 내 흑역사들이 여름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게 될지 몰라도 이렇게 소심하게나마 여름을 아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근사한 추억 같은 거 없어도 여름을 사랑할 수 있다."
<김신회 _ 아무튼, 여름>
나는 여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원래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지만, 그냥 밖에서 걷기 좋다면 좋은 계절이라는 정도의 의미만 부여하고 살았다. 내 기준에 맞는 계절은 통상 이른 봄이나 가을 정도였으리라. 무엇보다 여름은 더워서 별로였다.
올여름은 지난해보다 더운 것 같다. 습해서 그런지, 온도 자체가 높은 건지 제대로 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는 에어컨을 밤새도록 켜놓지 않았는데, 올해는 다르다. 얼마 전, 에어컨을 끄고 잤다가 새벽에 몇 번씩 깨고부터는 온도를 높여서라도 에어컨을 켜놓고 잔다.
선풍기도 켜고 자는데, 어떤 때는 어깨가 시려서 중간에 끄게 된다. 자다가 선풍기나 에어컨을 끄러 가는 게 얼마나 귀찮은지 이번에 깨달았다. 잠결에 '저거 꺼야 하는데...' 하는 생각과 그냥 자자는 몸의 저항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깨곤 한다. 이것도 요즘 우리나라처럼 진영 대결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순간 우스워졌지만.
한 여름이라 그런지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그 순간 그만 걸을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버틸 수 있었던 건, '꼭 저기까지 가야지. 혹은 다른 사람을 따라 잡아야지', 이런 류의 목표가 아니었다. 사소한 불편에 무력해지는 나를 무너뜨리고 싶은 의지였다.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용기였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주인공이 이혼한 전 배우자와 나눈 대화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체스는 그렇게 잘 두면서, 왜 인생에서 싸울 줄은 몰라요?"
플로렌스는 이런 말을 여러 번 했다.
"인생에서 싸우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자기 자신과 싸울 일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그가 했던 대답이었다.
진정한 경쟁은 나와 하는 것이다. 굳이 싸우려면 과거의 나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기든 지든 그건 전적으로 스스로에게 달렸다. 너무 전투적으로 사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좀 느긋해져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주변도 살피면서 걸으려고 노력한다.
벌써, 8월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이기도 하다. 6월이 한 해의 중간인데도 8월이 중간인 것 같다. 아마 8월이 지나면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선선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지내기 좋은 가을이 와서 그런지도 모르고. 삶의 매듭을 짓는 것, 계절이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겨울인 사람은 여름 나라에서도 겨울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