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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31. 2023

나는 다정함을 벌칙으로 살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들로 마음이 불편하다. 원래 하루도 조용히 넘어갈 날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에 쓰는 글이라도, 누가 읽든지 안 읽든지, 따뜻함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을 읽을 때가 있다. 누군가 댓글을 달아서 오래전에 쓴 글을 현재로 소환해 줄 때다. 글을 읽으면서 '내가 그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이런 책도 읽었네.' 하면서 쓴웃음을 짓곤 한다.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대개는 부끄러운 마음이다. 부족한 표현력과 문장력은 둘째 치고, 지나치게 교훈적이거나 감상적인 글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뭔가 성장하고 성숙해진 단초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개는 실망스럽다. 글은 결국 내 얼굴과 같은 것인데, 나는 여전히 나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워낙 부족하고 고쳐야 할 점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글을 쓰면서 뭔가 치유되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싶었는데,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문제가 많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이유로 개선이 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심함과 무뎌짐. 문제가 반복되면 뭐가 문제인지 알기 어렵다. 새벽에 서윤후 시인의 시 <그대로 두면 그대로 되지 않는>을 읽었다. 시인은 말한다.


"살면서 닳게 된 부분과 손쓸 수 없이 딱딱해진 부분이 닿을 때, 쓴다. 쓰는 손은 차갑고 차가운 손을 응시하는 것은 아마 따뜻함의 곤욕스러움을 잘 아는 것일 것. 나는 다정함을 벌칙으로 살고 있다. 나는 나의 슬픔을 비틀더라도 양보다 크게 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웃음이 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나도 글을 쓰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차가워진 가슴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여기에 뭔가를 쓰면서 나는 내가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다정해지기를. 그것만이 내가 갚아야 할 빚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눈물마저 말라버려서 속시원히 울어지지도 않는 나 자신을 보면서 시인처럼 차가운 실소만 짓고 만다.


"고요를 흥청망청 쏟으며 마음을 읽으려고 했던 날도 있었다. 가끔은 우울하냐는 질문이 새삼스럽고, 슬픔은 남몰래 귀신같이 내 몸을 빌려 청승을 떨었다. 종이 위로 첨언하는 나는 지나치게 인간다워서 인간이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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