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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8. 2023

음악도 때로 소음이 되는 법

브런치나 블로그, 그 어디에든 가급적 다른 사람이나 특정 기관을 비판하는 글을 쓰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부득이 예외를 두어야 할 일이 생겼다.


지난 주말, 집 근처 스타벅스(주로 '리저브'에 가는 편이다)에서 책을 읽었다. 너무 더워서 어디 다른 곳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하도 어수선해서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그제도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블랙핑크의 곡들.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몇 주째다. 그것도 연달아서. 나도 블랙핑크를 좋아하지만, 평소 소위 힙합 또는 댄스 팝 장르의 비트가 센 걸그룹의 곡은 책을 보거나 대화하는데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음악이 어울리는 장소가 따로 있다.


문제는 한두 곡 나오다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달아 집중적으로 나오고 다시 반복되는 것, 마침 읽고 있는 책도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문장을 곱씹어가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보니 음악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저번 주에도 몇 분 못 있다가 그냥 커피만 마시고 갔는데, 다시 이러니 이건 좀 아닌데 싶었다.


도저히 참기가 어려워서 매장 매니저에게 문의하니 돌아오는 답변은, 스타벅스가 블랙핑크와 프로모션 론칭 중이어서 그렇다고. 자기 매장만 그런 게 아니라 전국 스타벅스가 모두 똑같다고.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자신들은 어떻겠느냐고. 무척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중간중간에 다른 곡들도 함께 섞어서 틀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니 본사에서 정한 플레이리스트라서 그건 어렵다고 했다. 블랙핑크의 곡들이 많지 않아서 반복해서 틀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면서 프로모션 기간이 8월 말까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더는 뭐라고 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스타벅스는 재즈 계열이나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계열의 소프트 POP, 그것도 여러 뮤지션의 곡들을 골고루 섞어서 틀었는데, 이게 다 스타벅스를 특정 회사가 인수해서 생긴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객의 취향을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고 한편으로 불쾌하기까지 했다.




어떤 음악을 선호하는지는 각자 취향이 다르니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여 나는 내 취향의 음악을 다른 사람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당연히 카페에 가서도 꼭 나에게 맞는 음악이 나오기를 기대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번처럼 일방적으로 같은 종류의, 그것도 동일한 뮤지션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 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많은 카페를 다녀봤지만 처음 겪는 일이다.


하물며 커피를 파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지 카페 분위기를 압도하면 곤란하다. 백색 소음(ASMR), 즉 적당한 소음은 집중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지나친 소음은 공해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히트한 곡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반복해서 듣다 보면 음악도 때로 소음이 되는 법이다. 특히 대부분의 카페에서 외국 곡을 트는 건, 우리나라 곡이 별로라서가 아니라 같은 언어로 된 음악을 들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심한 간섭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공부할 때 클래식이나 재즈 등 단조로운 곡을 듣는 사람은 봤어도 댄스 곡을 듣는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다(각종 음원 플랫폼의 집중이 필요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 추천 곡만 봐도 이건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오늘 깨달은 교훈!! 내가 좋아도 다른 누군가는 싫어할 수 있다. 내 취향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곤란하다. 배경으로 머물러야 할 때는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반복이 필요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말과 행동도 장소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처럼 내가 떠나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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