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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17. 2023

문장의 미(美)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책을 읽을 때 문장이 아름다운지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수월하게 읽지 못한다. 멈추고 또 멈추고, 멈춤의 반복!! 문장을 음미하지 않고 쉽게 읽은 책은 기억에서 곧 사라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꼼꼼히 읽어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물며 시간에 쫓겨 대충 읽으면 차라리 읽지 않은 것만 못했다. 그런 이유로 책을 고르는데 점점 신중해진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미루다 미루다 최근에야 읽기 시작했다. 벌써 몇몇 문장에 사로잡혀 더 이상 다음 부분을 읽지 못하고 자주 멈추고 있다. 문장에 매료되었다고 할까. 문장의 아름다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금각사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 이 문장 앞에서 나는 마음이 아득해졌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좋으니, 언젠가는 나에게 친근감을 보여주고, 너의 비밀을 알려다오. 너의 아름다움은 지금 당장에라도 확실히 보일 것 같으면서 아직 보이지 않는구나. 내 마음속에 그리는 금각보다도 실물이 훨씬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다오. 그리고 만약에 네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면,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운가, 어째서 아름다워야 하는가를 말해다오.' 


이 글을 읽고 잠시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을 거라고. 붙잡을 것 같지만 쉽게 잡히진 않고, 사랑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실. 그 애틋하고 애절한 심정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내 능력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주인공은 마치 네가 왜 아름다운지 알려달라면서 공을 금각사에 넘기지만, 그렇다고 그가 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질문이 답이라고 생각하니 그가 금각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언젠가 문장은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은 문장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문장의 미(美)를 상상할 수 있는 내 마음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실망한다.


주인공이 금각사의 미에 절망했던 것처럼, 어떤 아름다움은 너무 지극하여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작가의 표현하고자 했던 관념이나 의도를 알지 못할 때 느꼈던 그 절망감이다. 다시 <금각사>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 이 책을 읽으면서 더위로 인한 불쾌함을 잠시 잊었다.


"이때 나에게 분명하게 하나의 자각이 생겼다. 어둠의 세계를 향하여 팔을 크게 벌린 채 기다리면 된다는 것. 머지않아 5월의 꽃들도, 제복을 입은 자들도, 짓궂은 급우들도, 내가 벌리고 있는 팔 안에 들어오리라는 것. 내가 이 세상을 바닥으로부터 쥐어짜서 움켜쥐고 있다는 자각을 지녀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자각은 소년의 긍지가 되기에는 너무도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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