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Aug 23. 2023

변하고 또 변하고 그럼에도 또 변해야 하는 것이 인생

톨스토이 ㅡ 신부 세르게이

앞날이 창창한,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한 남자가 육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인에서 신부로, 다시 수행자에서 떠돌이로 점차 변해 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톨스토이의 <신부 세르게이>에 나오는 세르게이가 그 주인공이다.


요즘 기준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인물일지 모른다. 욕망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그렇게 억누르고 억제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도의 문제를 그는 아예 차단해 버렸으니 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세르게이가 그렇게 변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사랑하는 약혼녀가 황제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 크게 실의에 빠진 그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등지고 만다. 그런 연유로 전도유망한 군인이 수도사가 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라도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꼈을 것 같다.


"그가 천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약혼녀 마리아에 대한 실망감과 모욕감은 너무나 강해서 그가 신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했고, 그의 내면에 고스란히 존재했던 어린 시절의 신앙심을 일깨웠다."


삶에 불어닥친 폭풍우를 통해 빛으로 나갔으니 그것도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는 신부, 그것도 아주 유명한 신부가 되었다. 장교일 때도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과 최고가 되려는 열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열망이 신앙심과 결부되어 그를 그곳에서도 돋보이게 한 것이다.


직업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는 잘 나고 잘 생긴 세르게이였다. 어쩌면 그가 신부가 되려고 했던 동기가 신앙적이지만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신부로서 명성을 얻었던 그가 왜 떠돌이 노숙자가 되었는지다.




신부가 된 것도 여인 때문이었는데, 노숙자가 된 결정적인 계기 또한 그의 준수한 외모와 신부로서의 명성 등을 알고 그를 유혹하러 온 한 여인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기도하고 그 결단의 증거로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이를 본 여인은 충격을 받고 수녀가 된다. 마치 김유신이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천관과 관계를 끊기 위해 애꿎은 말의 목을 벤 것처럼. 그는 욕정 앞에서 단호했다.


그렇게 신부로서 명성을 얻고 안정이 될 무렵, 그는 자신이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허다한 무리의 민중들로 인해 하루하루 자신을 소진하면서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을 나와 방황하다가 또 한 사람의 여인을 보고 회심한다. 어느 나이 많은 시골 노파의 삶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녀, 그러나 그녀는 하루하루 가족을 위해 자신이 맡은 일을 위해 충실하고 성실했다. 그녀를 본 그는 불현듯 중요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일상의 삶에, 자신이 떠안은 책임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참다운 신앙인의 자세라는 것!!


그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여생을 바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지극히 말년의 톨스토이 다운 결론이다. 그 역시 막대한 재산과 가족을 뒤로 한 채 떠돌이 신세의 구도자로 어느 오지의 역에서 삶을 마쳤으니까.  




여인 때문에 세상을 등졌고, 여인 때문에 신부라는 자리를 던졌던 그가 또 한 명의 여인 때문에 삶이 바뀌다니, 어쩌면 그 여인들은 모두 한 여인이 아니었을까. 삶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한 사람으로서 완성된 인격과 신실한 신앙을 위해서 신이 마련해 두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이다.


뒤돌아보니 내 인생도 다르지 않았다. 인생 곳곳에 나타난 사람들은, 좋든 싫든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든 아니든, 모두 나를 위해 신이 마련해 둔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 사람들의 실체를, 왜 그 사람들이 내 인생의 길목을 막고 서 있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삶이 주는 어려움만 인생의 스승이 아니었다. 때로 그 어려움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당시에는 신의 의도를 알지 못했으니 불평과 불만만 잔뜩 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남았던 후회는 바로 그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장의 미(美)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