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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28. 2023

지루함에서 벗어나려면 ㅡ 1

반복되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면 무료해지기 쉽다. 무료해지면 사는 게 지겹고 지루해진다. 당연히 딴생각을 하게 되거나 아니면 뭔가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적당한 선을 지킨다면 삶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디 그런가. 선을 지킨다는 것은 보통의 결심이나 인내심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일정한 선을 넘으면 그다음부터는 폭주하는 기관차,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루하루를 마지못해 소진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어떻게 하면 될까?


사람마다 지루한 생활을 벗어나는 방법은 다 다를 수 있다. 나는 딱히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일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당연히 삶이 무료하고 지겨웠다. 일도 하고 싶어서 할 때보다는 해야만 할 때가 더 많았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일본 정신과 의사 가바사와 시온은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아무리 소소해도 괜찮으니 뭐든 일단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아침산책 15분, 하루 수면 7시간, 몸풀기 운동 10분, 잠들기 직전 세 줄 긍정 일기 쓰기 등의 소소한 행동을 실천한다면 스트레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먼저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사두고 읽지 못했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필요에 의해서 책이 눈에 띈 것인지 아니면 책 생각이 난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딴에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삶을 살거나 생각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 보면 혹시 지루함에서 벗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다.    




처음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책을 읽는 것이 익숙해지자, 나를 비롯한 인간을 알기 위해선 인간의 일상과 삶을 그린 문학작품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라고 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은 아니다.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소설도 많아서 책을 잘 선택해야 함을 그때 알게 되었다.


평소에도 여러 권의 책을 읽지만 언젠가부터 그 여러 권의 책에 문학작품이 다수 포함되었다. 수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없으니, 가급적 세월이라는 장애물을 통과하거나 사람들의 망각을 이겨낸 책을 읽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그 기준으로 책을 고르고 있다.  


요즘도 지루한 생각이 든다 싶으면, 머리가 맑지 않으면 잠깐이라도 짬을 내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을 형편이 되지 않을 때는 신문이라도 읽는다. 다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10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퇴근 후나 새벽 또는 주말,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 좀 긴 시간 읽는다.


줄거리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은 드문 일이어서, 대개는 일정한 시간을 지키는 편이다. 지치고 피곤한데, 독서마저 그럴 수 없었다. 뭐든지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문학을 제외하고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문학 작품상을 받은 소설들이다. 베스트셀러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고, 평론가들이나 작가들이 나름 작품성을 인정한 소설 위주로 읽는다. 모든 책이 나한테 맞는 건 아니다. 다만 열린 마음으로 읽으면 나름 왜 상을 받았는지 수긍이 되었다.


아름다운 문장은 발견하는 것이지 읽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젯밤에도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을 읽다가 멋진 표현을 발견했다. 주인공이 금각사를 벗어나 바다에 간 장면이다. 여름이 지나 사람들이 떠난 곳, 그곳의 한적함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여름에는 해수욕으로 붐비는 해변도 이 계절에는 한적해져서, 단지 육지와 바다가 어두운 힘으로 대결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이런 문장을 접하면 머리가 띵해진다. 인적이 드문 한가로운 해변의 모습을 육지와 바다가 어두운 힘으로 대결하고 있다고 표현하다니, 주인공이 간 유라 해변을 가보진 않았어도 그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잠시 지루함을 잊었다.


지루한 이유는 뭔가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책 속에서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멋진 표현이나 아름다운 문장을 만날 때 그 순간 지루함을 잊는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책을 읽는 것이 참 묘하게 자극적인 거구나 하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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