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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20. 2023

행복은 순간을 낚아채는 것

한여름 방정식 ㅡ 신인류

여느 주말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고 산에 갔다가 책을 빌려 카페에 가는 일정. 주중과 마찬가지로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규칙적으로 사는 편이다. 이번 주말은 다행히 책을 잘 선택해서 지루하지 않게 보낼 것 같다.


문장이 어려워 읽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가볍게 읽은, 별생각 없이 쓱 지나간 책은 곧 기억에서 사라지고 마니까, 약간 어려운 책이 나에게 맞는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깨닫는 묘미,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책 속의 문장과 씨름하다가 지치면 잠시 나와서 주변을 걷는다. 종종 음악을 듣기도 한다. 오늘 들었던 곡 중에 인상적이었던 곡은 '신인류'가 부른 <한여름 방정식>이다. 2019년 8월 6일에 나온 곡이니 벌써 3년이 흘렀다. 공교롭게 내가 검찰에서 명예퇴직을 한 바로 그날 이 곡이 발매되어 나하고는 인연이 깊은 곡이다.


그 후에도 가끔 이 곡을 들으면서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젊은 시절, 평생 공직자로 살겠다며 선택한 검찰을 그렇게 떠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지만 그렇다고 후회나 미련은 없다.


아무튼 이 곡을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 곡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곡 시작 부분에 나오는 피아노 선율 때문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한적한, 맑은 햇살이 바다 표면에 부딪혀 눈이 부신 바닷가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여름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아련함도 밀려온다. 듣다 보니 어느덧 5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여름의 한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추억은 딱히 없지만, 책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문장과 이 곡이 있어 내가 경험한 이 여름은 풍성했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기초, 한 남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행복을 오래 지속되는 어떤 상태로 생각한다. 적어도 수십 년은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정말로 순간을 낚아채는 것이다." 순간 속에 존재하는 소소해 보이는 일상의 삶에서 건져 올려야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억이 반드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인 만남이나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소에 가지 않아도,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평범한 일상에서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는 그래서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 기억할 것도 바로 그 느낌이다. 3년 전에 이 곡을 듣고 느꼈던 그 감상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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