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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29. 2023

실제의 삶과 가상의 삶 사이에서 흔들리는

지난주 금요일, 주말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집에 와서도 통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무더운 날씨에 산책을 한 탓인지 기운도 없고, 그렇다고 뭘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금요일이라서 긴장이 풀린 탓인가 보다 했다. 읽고 있는 책도 술술 읽히지 않아서 자꾸 잡생각만 났다.


잘 보지 않던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지만 딱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도 없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넷플릭스에서 요리와 관련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봤지만 영상을 보기보다는 그냥 틀어놓는 수준이었다.


휴대폰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고,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먹는 장면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참 잘 먹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먹는 것도 저렇게 열심히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30분이 훌쩍 넘어섰다. 어, 이게 뭐지, 금요일엔 좀 일찍 자려고 했는데 시계는 벌써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화면을 봐서 그런지 누워도 바로 잠이 오지 않았다.  




쉬기 위해서는 또는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마음이 평온해야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다. 독서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책을 읽으려면 집중해야 하고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정은 결국 내가 무엇을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숏폼, '릴스'나 '쇼츠'라고 해서 30초 이내 영상이 유행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짧은 동영상에 빠져 밤을 새우거나 집중력을 잃고 더 큰 자극을 찾다가 감각마저 잃어버리기도 한다는 기사(링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평소 무엇을 보는가가 무척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기사였다. 어제 나도 톡톡히 경험했다. 여기에 빠지면 끊는 게 쉽지 않겠다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책만 읽으라는 건 아니다. 활자화된 인쇄물보다 영상이 대세인 요즘, 꼭 책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나만 해도 어려운 책을 읽다가 막히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으로 손이 가곤 한다. 휴대폰은 통화나 문자 등 기본적인 기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도구가 된 지 오래되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고 휴대폰으로 어떤 유용한 정보를 찾거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 앱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영상을 자주 보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혼란스러운데, 그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어떻겠는지, 어쩌면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름다운 대상에 매료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상에 매료된 자기 자신에게 매료된다. 수시로 셀카를 찍고, 식당에 가더라도 사진 찍기 좋은 음식을 주문하고 남들이 선호하는 장소에 가면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에 올릴 생각부터 한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보편화,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절망이라는 양 극단 사이를 오고 간다. 당연히 자극적인 영상이나 사진이 SNS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걸 보고 있으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즐겁고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요즘 시대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컬(ironical)한 말이지만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극을 줄이고 감각을 살려야 한다. 감각을 살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사유의 깊이는 낮아지고,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당연히 책을 멀리하게 되고. 굳이 복잡하거나 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문제와 씨름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세상이 점점 답답하고 걱정이다. 그렇다고 뾰족한 답도 없으면서. 나도 벌써 소위 꼰대가 된 걸까. 아마 그럴지도. 나나 잘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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