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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27. 2023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무르익는 계절 ㅡ 여름

우리는 지금 한여름을 지나고 있다. 찌는 듯한 무더위는 한밤중에도 열대야의 형태로 이어져 우리를 힘들게 한다. 얼마 전 태풍으로 더위가 좀 가시나 했더니 다시 무더워졌다. 여름이 더운 건 당연한 현상이니 덥다고 여름을 탓할 게 아니다. 그럼에도 견디기 힘든 건 사실이다.  


할 수 없이 더위를 피해 시원한 카페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요즘 읽고 있는 이청준 작가의 <젊은 날의 이별>에는 마침 여름과 관련하여 이런 글이 나온다.


"여름은 봄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한 꿈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린 계절이다. 까닭 없이 가슴이 두근거려지는 계절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을처럼 그리운 추억이 깃드는 회상의 계절도 아니다. 여름은 꿈이나 추억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거기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무르익고 있는 현장의 계절이다."




봄과 가을에 대비해서 여름을 평가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그래서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봄, 뭔가 지난 시절을 회상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우수에 찬 가을에 비해 확실히 여름은 뭔가 직설적이고 즉물적(卽物的)인 계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참을 생각할 필요 없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있으면 여름의 속성을 바로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하면, 열정적인 젊음이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여름은 뭔가 풀어지는, 어디론가 떠나는 휴가가 상상되기에 이 여름에 심각하거나 후회를 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봄이 미래 지향적이고 가을이 과거 지향적이라면 여름은 현재 지향적, 현재진행형의 계절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격언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 여름이다.


문제는 여름이 되었는데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놀아본 사람만이 놀 줄 안다고, 여름을 한껏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여름에 충실한지도 모르겠다.


이청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여름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돌고, 하루하루 비슷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여름이 좋았다 싫었다 하는 이유가 꼭 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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