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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01. 2023

비는 내리고 마음은 흐리고

그제는 장마도 아닌데, 그제부터 내린 비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비가 와서 그런지 몸은 늘어지고 마음도 시도 때도 없이 무거워졌다. 오지도 않은 앞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과 후회… 쓸데없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우중충한 날씨일수록 마음을 편안히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을까?


방법은 늘 알고 있었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내가 처한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고. 우울한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사람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불안하다면 미래를 앞당겨 미리 살고 있는 거라고. 과거와 미래는 모두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니, 밖에 나가기도 어려웠다. 일하다가 잠시 사무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 오는 거리의 풍경을 봤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 건물들도 흐린 날씨 뒤로 숨었다. 비 오는 풍경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운치도 있고 나름 낭만적이기도 하고. 그러나 막상 밖에 나가 빗속에서 뭘 하려면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게 아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나는 잘할 것 같지만, 막상 내가 그 일을 하거나 그 입장이 되면 그 사람과 별 차이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상과 현실, 시선과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변화다.


빗속을 걷다 보면 마치 비가 나한테만 내리는 것 같다. 아무리 피해도 나만 따라오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잘도 피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린다. 나만 맞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 뿐. 걱정, 근심도 마찬가지. 나만 힘들고 괴로운 게 아니다.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서 오는 착시현상이다.


비가 한참을 오더니 저녁 무렵에 잠시 그쳤다. 그러나 여전히 해를 볼 수 없었다.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지만,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넘어갈 건 넘어가야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 그게 인생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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