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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04. 2023

어디서나 살았고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던 ㅡ 산책

어제,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평소 앉는 자리에 앉지 못해서, 아니면 옆에 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전화를 해서, 아니면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어서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여러 이유가 겹친 것 같다.


몇 줄 못 읽고 딴짓을 하기 일쑤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산책을 나갔다. 밖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삼청동과 북촌 그리고 서촌 일대를 걸었다. 그동안 더워서 걷지 않던 길인데, 이젠 제법 걸을만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인적이 드문 서울 한복판을 음악을 들으며 유유히 걷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뺨에 부딪히는 공기도 한결 선선해졌다. 일단 습도가 높지 않아 땀이 나도 흠뻑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여전히 더운 기운은 남아 있지만 걷기에 큰 지장이 없는 날씨였다. 간간이 나처럼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과 연인들이 보였다.

주말 밤에는 조깅을 하는 동호회 회원들과 혼자 조깅을 하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이 많다. 열심히 뛰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치곤 한다. '나도 한 번 달려 봐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더운 날씨에 왜 저렇게 힘들게 뛰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차라리 뛰면서 땀을 흠뻑 쏟아내면 시원해질 것 같았다. 저래서 동호회를 만들어 같이 뛰는구나 했다.   


경복궁 옆 길도 비교적 한산했다. 청와대가 개방되기 전과 비슷했다. 거리 곳곳에 있는 미술관에는 각종 전시를 안내하는 배너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한 번 간다 간다 하면서도 통 짬을 내기 어려웠었는데, 아니다. 정확하게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좋은 미술관이 있는데도 잘 가지 않았던 것은, 미술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도중에 멈추어서 전시를 안내하는 배너를 유심히 살펴봤다. 이번 가을에는 꼭 한번 들르리라 마음먹으면서.

걷다 보니 9시가 훌쩍 넘었다. 피곤하지만 걷기를 잘한 것 같다. 나는 이 거리를 좋아한다. 특히 밤 시간, 한적하게 걸으면서 일주일 동안의 내 생활을 돌아보고 다음 주 결심을 다지곤 한다. 걷다 보면 남아 있는 힘이 소진되어 모든 욕망과 욕심, 후회와 원망까지 풀려나간 듯해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개운해지곤 한다.


나처럼 많이, 틈나는 대로 걸었던 작가가 있었다. 스위스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로베르트 발저(1878 - 1956)가 그 주인공. 그가 쓰고 배수아 작가가 번역한 <산책>이라는 책에서 배수아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산책이 곧 그의 글이 되었다. 걷기는 그의 스타일을 구축한 육체였다. 걷기를 통해서 '그는 어디서나 살았고, 그 어디에서도 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글 안에서 '하나의 내면이 되었고,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그는 화창한 아침에 집을 나서서, 시간이 늦었고, 어둠이 세상에 깔린 다음에야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때로 그는 밤중에도 산책을 했다. 그는 기나긴 산책자이자 홀로인 산책자였다."


걷는다는 것은 어디서나 사는 그러나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행위이자 내면을 돌아보는 자기만의 성찰의 시간인 것이다. 성찰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걷다 보면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내가 로베르트 발저가 된 느낌이다. 가끔 이런 착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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