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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2. 2023

눈으로 볼 수 없는 새로운 시선을 얻는 것

나는 시력이 좋지 않다. 초등학교 때부터 안경을 꼈으니 평생 안경을 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안경을 낄 정도로 눈이 나쁜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같은 반 친구 중에 안경을 끼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무척 부러웠다. 얼굴에 또 하나의 장식을 한 것 같아서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안경을 끼면 왠지 공부도 잘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안경을 낄 수 있을까.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했다. 안경을 낄 명분이란 결국 눈이 나빠서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했다. 그때부터 책을 읽을 때 일부러 가까운 거리에서 보려고 했다. 그러면 눈이 나빠질 테고, 부모님에게 안경을 사달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효과가 있었는지 점점 칠판 글씨가 흐리게 보이더니 학교에서 하는 신체검사에서 한쪽 눈에 근시가 있으니 안경을 끼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당장 부모님을 졸라 안경을 하러 갔다. 흔한 검은 잠자리 뿔테안경이었다.


안경을 끼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선명한 것은 당연하고, 왠지 세상을 다 얻은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안경 없이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시력은 점점 더 나빠지고, 그에 비례해 안경 도수는 점점 높아졌다. 난시까지 더해져서 이제는 안경 렌즈의 도수가 복잡해졌으니, 과거의 어리석은 짓을 생각하면 무척 후회스럽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안과에 정기검사를 받으러 왔으니, 더 심정이 복잡하다.




어느 날, 안경을 끼지 않고 세상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안 그래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많은데, 굳이 선명하게 세상을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안경을 끼지 않고 한두 시간을 보냈다. 흐릿한 세상, 식별되지 않는 사람들. 불편하긴 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때 묻은 세상에서 때가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렇다고 세상이 깨끗해진 것도 아닌데.


가끔 그렇게 안경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가 있다. 안경을 벗으면 잘 보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익숙하지 않은 어둠, 뭔가 불안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렇게 몇 분이 지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그때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다. 눈을 뜨고 있으면 들을 수 없었던 소리를. 나아가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뭔가 희미한 것들도 보이는 것 같다. 역시 눈을 뜨고 있으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게 뭘까? 이게 무슨 소리일까? 빛과 형상들? 소리들? 그러나 선명하지 않다. 분명한 건 세상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소리와 형상이 아니라는 사실. 보고 싶었고 그리웠던 누군가의 얼굴일까. 아니면 내가 꿈꿔왔던 세상일까.   


아, 그렇다. 사람이 만든 안경이 아닌 다른 시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평소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 내가 진정으로 갖고 싶었던 그 시선이었음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중요한 건 나와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얻는 것이다. 안경으로는 볼 수 없는, 지금의 시선 너머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안경이 아닌 그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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